연필이 가는 길 28

집과 방

아주 오래전.... 학교를 졸업하고 집을 떠나 처음 가지게 된  나만의 방.비록 책상을 놓고 남은 자리가 겨우 몸 하나 뉘일 공간뿐이었지만그 자리가 얼마나 넓고 편했던지...사다리도 없는 다락에 이불 펴서 침실을 만들고자러 올라갈 때마다 끙끙댔는데...그 뒤에 방은 조금씩 커지고 집이 되었지만내가 필요한 것은 그저 작은 방이면 족한데...                                         2006. 6. 9

짐승 하나

뉘나 가슴에 작은 짐승 하나를 키운다고 하지요.'처녀들의 저녁식사'라는  영화를 보다가 내 가슴을 퍽! 치는 말이었습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정말 ... 이라는 말이 딱 떠 올랐습니다.이제껏 나는 그 짐승의 이름을  바람이라 말해왔습니다.가끔 그 짐승은  가슴을 넘어 목구멍 너머로 나오려고 합니다.그 걸 막느라  매 놓은 줄을 점점 줄이고 또 줄이지만어느새 그 짐승은 다시 내 목구멍 너머를 넘보고 있습니다.그걸 삼키느라 오늘도 나는 목구멍이 아파 옵니다.가끔 그 짐승은  저 아래  위장쯤에서 누워 있을 때가 있습니다.그럴 땐 적어도 평온한거 같지만그러나내가 진짜 바라는 것이그 평안함인지 고통인지 잘 모르겠습니다.언제까지 그렇게 막을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습니다.그건 편함과 타협한 것에 대한 벌입니다. ..

첫 발자국의 기억

길을 걸을 때마다그것이 낯선 길일 때에는 더욱더내가 처음 낯선 길을 나섰을 때가 생각납니다.세상을 처음 본건 육지이지만돌도 채 안된 내가 간 곳이 제주도였으니내 처음 기억은 온통 제주의 어촌 마을입니다.처음 기억나는 것은... 집이 바다가 가까운 곳인지짧은 반바지( 라기보다는 빤슈에 가까운...)  하나만 입고  그냥 걸어 나가 바닷가에서 놀다가 배고프면 돌아오는그런 일상이었고..좀 더 커서... 정확한 기억은 안 나지만 학교는 다니기 전이였으니 아마 여섯일곱 살 때일 거라고 생각되는데그때의 집 바로 뒤에 조그마한 야산이 있었지요.어느 여름.여느 때처럼 친구들과 어울려 술래잡기도 하고 삐비도 따 먹으면서놀다가 집과 반대쪽으로 길게 난 길이 궁금해지기 시작했지요."우리 이 길로 한번 가 보자"  그러나 다..

커피 한 잔의 유혹

무슨 일이든 딱 좋은.... 그러다  한 걸음 더 나가면잘못되는 일이 있습니다.사랑과 성욕의 차이가 뭘까요?뭘로 구분 할 수 있을까요?처음엔 사랑이라 생각했는데지나고 보니 영 아닌 경우도 있고지나고 나서야 사랑이었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그게 오후 3시에 마시는 커피입니다.3시 전에 한 두잔 마시면대장 활동도 활발하고 혈액순환도 좋고기분도 좋고 뭐 다 좋지요.그러나 3시가 넘어서 마시는 커피는밤새 불면증을 만들어 뒤척이게 합니다.그게 한 모금일지라도 말이지요.멋진 연애 소설을 읽으면 그 주인공이 나였으면 하기도 합니다.달콤한 영화를 보면 마치 나인 듯 가슴 저리기도 하지요.그게 3시의 커피입니다.향기로운 향에 취해서 살짝만 입에 대보자 하다 보면그날의 달콤한 잠을 빼앗깁니다.그냥 참을걸 하고 후회하..

오 덤불

요크셔테리어 종입니다.나이는 5세 , 사람 나이로는 35-40세 정도 되니장년인 셈이지요.우리 집에 온 것이 이제 3년째 되나 보네요.불우한 어린 시절.. 아기 때 몇 주인의 손을 어떻게 어떻게 건너동생 집에 왔고, 다시 친정으로 갔다가우리 집으로 왔습니다.그렇게 주인이 여럿 바뀌여서인지 처음 왔을 땐 참 불안정했고 차만 타면 안절부절 못합니다.그 스트레스가 무척 심했나 봐요.먹돌이입니다.그저 뭐든 너무나 잘 먹고  늘 놀아 달라고 조릅니다.다 제 할 탓이라고 애완견들이 이쁨을 받는 이유가 있더군요. 사람은 제 할 일에 빠져 아는 척도 안 하는데이 놈은 온몸으로 반가움을 표시합니다.얘 때문에 가족여행도 못 갑니다.하룻밤만 두고 가도 다들 여행은 뒷전이고 집에 빨리 가야 한다고 서두릅니다. 정이란 게 무엇..

새 해

2005년이 되었습니다.한 해가 가고 다시 새 해가 된다는 것이사십몇 번을 하고 나니 별로 새로울 것도 의미 찾기도 새삼스럽고...늘 그렇듯이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빌어 보는 것이 다지만나 자신을 위해 하나 떠올린다면천천 히........ 그러나 꾸준히늘 천천히도 안 되고, 꾸준히는 더욱 힘든 것이라이번에도 공수표로 끝날 수도 있지만늘삶이란 새로 생각해 내고 다시 시작하는 것이 아니겠는지요!!                            05. 2.17

떠나보내기

아이들이 어릴 때24시간 눈을 뗄 수 없는 나이일 때는내 개인 시간이란 없었답니다.아마 어떤 엄마든 다 그러겠지요.그땐 나 혼자만의 시간이 하루 1시간만 있어도 행복하다고 느꼈더랬지요.아이들이 자라조금씩 내 손을 덜 필요로 해도그러나 눈 안에 늘 있었는데이제 큰 애가 기숙사를 가면서내 눈에서도 멀어졌습니다.불과 16년.길다면 길지만 80년 인생에서 겨우 온전히 함께 하는 시간은 반의 반의 반밖에 안 되는군요.우리 모두 겪은 일이지만길 떠난 자식은그 나름대로의 자유를 느끼고 새 환경에 적응하면서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갑니다.그걸 뒤에서 지켜보는 부모는 내내 걱정과 그리움으로 남지요.그렇게 성가스럽던 아침 깨우기도 없고아침 조금 먹는다고 밥상에서 싸울 일도 없고저녁 늦게까지 졸린 눈 비비면 기다릴 수고도 없어..

또 다시 가을...

가을이 오고온 것만큼 빠르게 그 발걸음을 재촉합니다.언제나 오고 가는 계절인데어떤 계절은 빨리 가길 기다리고어떤 계절은 가는 게 서럽고...가슴앓이의 흔적처럼노랗게 붉게 물든 잔해.다만 기나긴 인고의 시간을 위한 준비일 뿐인데인간의 머리는 오직그들의 자로만 재고 있습니다.시리게 푸른 계곡의 물과 그 위를 덮어 온기를 나눠 주려는 낙엽과그 따스함을 나눠 가지려는 나.우리 곁에 남기고 가는 시간의 흔적입니다.                                  04.10.30

늙는다는 것은...

오랜만에 친정어머니와 산엘 갔습니다. 올해 73세. 그동안 직장다니느라 평일엔 시간이 안되고 쉬는 날은 가족들과 횡~ 하니 가버리고 "나도 가고잡픈디... 산에 바람이 좋지야?" 하셨는데... 직장을 관두게 되고 그래서 아주  오랜만에 함께 무등산엘 갔습니다. 이제 다리도 아프고, 잘 걷기도 힘들고 그래도 단풍이며 산 내음이 좋다고 연신 좋다 좋다 하십니다. 약사암에 올라 새인봉 바라보며 따땃한 절 마당에서 해바라기 하다가 나무 의자에 앉아 잠시 자울 자울..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전 솔직히 엄청 재미없어 몸살 나려고 했지만 그렇게 좋아 하시는걸 보니 참 짠하다 느껴 집니다. 자연을 좋아 하시는데 이젠 뉘가 모셔가지 않으면 혼자 나서기도 힘든 나이 늙는다는 건 그저 짠한 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