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보] 23 광주오월인권길 5

[도보] 오월인권길 5길 (영혼 코스) 11.4km

걸은 날: 23년 7월 11일 화요일 코스: 전남대~문흥동~석곡~518 묘지/ 실거리 13.45km 폭우가 쏟아진다고 예보 된 날. 출발 때만 안 오면 일단 나서기로 했다. 비는 오락가락해서 이정도면 오히려 덥지 않아 좋다. 518광주민중항쟁 당시 계엄군이 주둔해 있으면서, 담양 순천으로 가던 차량과 시민에게 총격을 가해 희생자가 생긴 곳이다. 그들은 사망자를 교도소 근처에 암매장했다. 지금은 교도소가 옮겨가고 그 자리에 뭘 하고 있는진 잘 모르겠다. 지금도 교도소 근처에서 무연고 시신이 발견되고 있다 망월동 묘지에 항쟁 중 사망자를 유족들은 손수레에 싣고 와 묻거나 연고자가 없는 이들은 청소차에 싣고 와 이곳에 묻었다. 민주항쟁이 '518민주화 운동'으로 되면서 국립묘지가 만들어져서 많은 분들이 옮겨갔..

[도보] 오월인권길 4길 (열정코스)7.03km

걸은 날: 23년 6월 20일 화요일 코스: 518 기념공원~광천동~전남대/ 실거리 7.9km 집에서 역방향으로 출발~(정방향으로 했어야 길이 쭉 연결되는데 ㅠㅠ) 짧은 길이라 그냥 간단히 걸어보려고 시작했다. 4길이지만 그래서 젤 먼저 걸었고 사진도 자세히 안 찍었다. 그런데 걷다보니 그렇게 걸으면 안되는 길이라는걸 다 걷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ㅠㅠ 계엄군의 무자비한 폭력에 격분한 운전기사들이 모여 항쟁 참가를 선언하고 20일 차량 시위를 시작한 곳이다. 운전기사들은 대형버스와 택시를 몰고 경적을 울리며 금남로로 향했다. 후기] 계속 도로를 걷는 길이고, 터미널 앞 길은 많은 차들로 매연도 심하다. 광천동 성당 '들불야학 옛터'를 보게 되어 반가웠다. 짧은 코스라 짬날 때 하기 좋은^^

[도보] 오월인권길 3길(광장코스) 10.7km

걸은 날: 23년 6월 23일 금요일 코스: 광주공원~ 운천저수지~518 자유공원~518 기념공원/ 실거리 13.5km 버스로 향교 앞에 내리니 벽에 재미있는 안내도가 있다. 사직동 탐방 코스 2개. 합해서 3km도 안 되는 거라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걸어보기로 했다. 전라도 정도 천년을 기념해 중건 중인 ‘희경루(喜慶樓)’. 희경루는 1451년(문종 원년) 무진군사(茂珍郡事) 안철석(安哲石)이 공북루의 옛 터에 건립한 누각으로, 때마침 무진 군에서 광주목으로 승격·복호 됨을 기념하기 위해 ‘함께 기뻐하고 서로 축하한다’라는 희경(喜慶)이라 명명해 호남 대표 누정으로 이름을 알렸다. 신숙주는 ‘동방(東方)에서 제일가는 루(樓)’라 칭송했다. 희경루의 원래 위치가 충장우체국 일원이었고, 외관은 동국대 소장..

[도보] 오월인권길 2길 (희생코스)19.7km

걸은 날: 23년 6월 29일 목요일과 7월 4일 화요일 코스: 518 민주광장~전대병원~주남마을/ ~남구 체육센타~남구청~광주공원/ 실거리 9+ 11.9=20.9km 1길이 끝난 곳, 518 민주광장에서 10시 5분, 2길을 시작한다. 더운 여름철이라 두 번에 나눠서 오전에만 하기로 했다. 80년 5월 22일, 당시 광주의 민주 인사들이 모여 수습대책을 논의하고 정리한 곳이다. 7월부터는 구속자 석방과 진상규명을 요규하는 월요미사가 진행됐던 곳이다. 5월 17일 비상계엄 확대조치로 계엄군이 진주했고, 연행되어 온 수많은 시민과 학생들이 체육관 야전 막사에서 잔혹한 폭행을 당한 현장이다 복도까지 밀려든 부상자와 중환자들을 헌신적으로 치료하고 돌본 518 민주화운동의 야전병원이었다. 자발적인 시민 헌혈 행..

[도보] 오월인권길 1길 (횃불코스) 5.97km

걸은 날: 23년 6월 28일 수요일 코스: 전남대~광주역~ 518 민주광장 (구 도청)/ 실거리 8.1km 광주 시내에 걷는 길이 없을까 찾다가 트랭글에서 오월 인권길을 찾았다. 주로 도로를 걷기는 하지만 제대로 된 역사 공부도 하고, 멀리 가지 않아서 좋다. 처음엔 '걷기'만 생각하고 걸었는데 걷다보니 그냥 걸을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열심히 찾아보고 공부하며 걸었다 518 개요) 18년 독재자 박정희 사망 후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가 집권야욕을 키우고 있었다. 우리 국민은 날마다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에 나섰고 광주에서도 날마다 집회와 시위가 이어졌다. 신군부는 5월 17일 자정을 기해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시위 해산에 ‘계엄군’이란 이름으로 포장된 공수부대를 투입했다. ​광주에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