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보] 23 광주오월인권길

[도보] 오월인권길 1길 (횃불코스) 5.97km

낭가 2023. 6. 29. 15:25

걸은 날: 23년 6월 28일 수요일

코스: 전남대~광주역~ 518 민주광장 (구 도청)/ 실거리  8.1km

 

광주 시내에 걷는 길이 없을까 찾다가 트랭글에서 오월 인권길을 찾았다. 주로 도로를 걷기는 하지만 제대로 된 역사 공부도 하고, 멀리 가지 않아서 좋다. 처음엔 '걷기'만 생각하고 걸었는데 걷다보니 그냥 걸을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열심히 찾아보고 공부하며 걸었다

 

518 개요) 18년 독재자 박정희 사망 후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가 집권야욕을 키우고 있었다. 우리 국민은 날마다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에 나섰고 광주에서도 날마다 집회와 시위가 이어졌다. 신군부는 5월 17일 자정을 기해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시위 해산에 ‘계엄군’이란 이름으로 포장된 공수부대를 투입했다.

​광주에서는 5월 18일부터 27일 새벽까지 열흘 동안 민주주의를 위해 죽음을 무릅쓴 항쟁을 벌였다. 시민들은 계엄군을 물리치고 22∼26일 닷새 동안 ‘해방광주’를 만들었다.

사적은 29까지 있는데 28개는 오월 인권길 걸으며 만났고, 2구간에 있는 '사적 15호 광목간 민간인 학살지'(효덕 지하차도 위)는 길을 벗어나 있어 나중에 따로 갔다. 정해진 길에서 조금 벗어나 있으니 같이 넣었으면 좋을걸 생각했다.  

 

1길의 코스 지도

 

전남대 정문 왼쪽에 있는 박관현열사 조형물

 

전남대 안에 있는 민주길

 

10시 19분, 518민주화 운동의 시발점이 된 전남대학교 정문(518민중항쟁 사적 1호)

 

518당시 정문 앞 상황을 보여주는 사진

 

정문 왼쪽에 있는 조형물, 횃불모양이다

 

 5월 20일 밤 계엄군이 비무장 시민을 향해 발포, 2명의 사망자와 다수의 부상자가 나오자 시민들이 적극 동참하는 계기가 되었다. 

10시 38분, 광주역 광장(사적 2호)

 

당시 시외버스 터미널이 있던 곳으로 전남 일원을 잇는 교통중심지였다. 5월 19일, 계엄군의 과잉 진압을 규탄하는 시위대에 계엄군이 대합실까지 들어가 총검을 휘두르며 피비린내 나는 아수라장을 만들었다는 소식이 시외로 나간 사람들에 의해 전해지면서 전남 전역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 

11시 2분, 시외버스공용터미널 일대 (사적 3호)

 

광주 419민주혁명 발상지인 광주고등학교

 

518 최초 발포지(사적 21호)

 

당시 거리에 들어온 탱크

 

광주의 큰 어른 홍남순 변호사. 판사로 일하다가 63년 첫 변호사 사무실을 이곳에 개업하여 민주화 운동을 시작하였다. 518 당시 민주화운동 수습대책위원으로 계엄군과 협상을 진행하였으나 계엄군에 의해 체포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수감되었다가 81년 형집행정지로 석방되었다. 그 후 518 혁명의 진상규명과 광주시민의 명예회복에 애쓰셨다. 2006년 돌아가셔서 망월동 묘지에 안장되었다.

518 사적지 제 29호로 지정되어 원형복원사업이 진행 중이라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재야 민주인사들이 모여 토론하고 회의했던, 홍남순 변호사 가옥(사적 29호)

 

광주학생독립운동 발상지인 전남여자고등학교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하에 군부의 검열을 받던 언론은 항쟁의 열기와 계엄군의 과잉진압등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아 시민들의 항의가 이어졌다. MBC는 5월 20일 밤에 화재가 났고 21일 새벽엔 KBS건물이 불탔다.

11시 47분, 광주 MBC 옛터 (사적 7호)

 

사회과학 서적을 주로 파는 서점이었는데 청년과 학생들이 모여 대책을 논의하고, 격문과 현수막 제작 등 민주화 촉구 궐기대회를 준비했다. 광천동의 ‘들불야학’ 강학과 노동자들이 이 서점을 중심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투사회보’를 제작․배포했다.

녹두서점 옛터(사적 8호)

 

유인물 제작과 배포, 궐기대회 물품 제작, 모금운동 등을 편 곳이다.

광주 YWCA 옛터(사적 6호)

 

금남로. 시민들이 계엄군에 맞서 날마다 격렬하게 맞선 항쟁의 거리다. 

금남로 (사적 4호)

전 카톨릭센타. 당시 민중항쟁의 중심이 됐던 건물이다. 현재는 '518 민주화운동 기록관'이며 기록물은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있다. 

518 민주화운동기록관

 

12시 14분, 금남로 공원. 광주의 주 도로에 있는 공원으로 시민들이 자주 모인 곳이다

 

 

315 발발지. 이것도 처음 알았다 ㅠㅠ

 

그리고 아래 사진부터는 518 민주광장 안에 다 있다.

회화나무 이야기

 

12시 26분, 518 최후의 항전지 옛 전남도청 별관

 

518 민중항쟁 알림탑

 

희생자의 주검이 안치됐던 통곡과 애도의 공간이다. 아버지의 영정을 든 어린아이의 사진도 여기에서 외신기자에 의해 찍혔다.

상무관 옛터(사적 5-3호)

 

518항쟁이 마지막까지 이어졌던 옛 도청(오른쪽 흰 건물)과 항쟁의 주 무대였던 도청 앞 분수대(하늘색)

도청과 518민주광장 (사적 5호)

 

종각이 있는 곳은 조선시대 광주읍성의 관아터였고 전남 경찰국 정보과 대공분실이 있던 곳으로 민주 인사들이 고문과 사건 조작을 당했던 장소이다. 민주의 종은 2005년 11월에 지었으며 글씨는 고 김대중대통령의 친필이다.

민주의 종

 

시계탑

 

시계탑에 대해 알지 못했던 이야기

 

민주광장 건너편에 있는 건물로, 당시 전남일보사(현 광주일보사)와 전일방송이 있었다. 518항쟁 당시 헬기 총격에 의한 총탄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이다. 

전일빌딩 245

후기] 도로는 걷기 적합지 않지만 이야기가 많아서 지루할 틈이 없이 지나간다. 잘 아는 듯한데 이렇게 몰랐나 싶게 많은 공부를 한 하루였다. 거리는 길지 않지만 시간은 넉넉히 갖고 걸어야 할 길이다. 오랜만에 옆지기와 나의 모교을 보게 되어 반가웠던 걸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