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이 가는 길

첫 발자국의 기억

낭가 2012. 9. 11. 16:30

 

길을 걸을 때마다
그것이 낯선 길일 때에는 더욱더
내가 처음 낯선 길을 나섰을 때가 생각납니다.

세상을 처음 본건 육지이지만
돌도 채 안된 내가 간 곳이 제주도였으니
내 처음 기억은 온통 제주의 어촌 마을입니다.

처음 기억나는 것은... 집이 바다가 가까운 곳인지
짧은 반바지( 라기보다는 빤슈에 가까운...)  하나만 입고  
그냥 걸어 나가 바닷가에서 놀다가 배고프면 돌아오는
그런 일상이었고..

좀 더 커서... 정확한 기억은 안 나지만
학교는 다니기 전이였으니 아마 여섯일곱 살 때일 거라고 생각되는데
그때의 집 바로 뒤에 조그마한 야산이 있었지요.

어느 여름.
여느 때처럼 친구들과 어울려 술래잡기도 하고 삐비도 따 먹으면서
놀다가 집과 반대쪽으로 길게 난 길이 궁금해지기 시작했지요.
"우리 이 길로 한번 가 보자"  그러나 다른 아이들은 별 관심이 없는 듯 반응이 없었고...

놀 때마다 그 길 끝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서 쳐다만 보다가
어느 날 드디어 혼자 그 길로 걷기 시작했답니다.
한 여름이 아니라 가을이 다가오는 때였을까요?
그리 더웠다는 느낌은 아녔으니까요.

그렇게 걷고 또 걸었지만 늘 봐 오던 나무와 풀과 산등성이뿐
기대했던 특별한 뭔가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한 참을 걷다가
해가 뉘엿뉘엿 산 아래로 가파르게 떨어지며
찬란한 햇살이 누그러지기 시작하자
문득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답니다.

다행히 어긋나는 길 없이 곧장 걸었으므로
뒤 돌아 다시 곧장 걷기 시작했고
갑자기 어두워지는 세상이 무서워 뛰기 시작했고
그렇게 어둑어둑한 산 길을 땀이 흐르도록 뛰어서
집에 돌아왔던.....

이미 동네의 집들은 불을 켜서  그 불빛이 어찌나 그리 반갑던지
그 불빛에 안도하며 집에 들어섰다는...

어딜 갔었냐고 몇 마디 얻어 들은 거 같기도 하고
그런 꾸지람마저 반갑게 들었던 거 같기도 하고...

그 어린 나이에
뭐가 궁금했었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웃기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고 무지한 거 같기도 하고.

지금도 어느 길인가 걷다가
낯선 길이 보이면 이 길은 어디로 가는 걸까 하고
들어서는 버릇이 그때부터 시작했나 봅니다.

익숙지 않은 길에 대한 호기심,
지금도 그런 길을 보면 가슴이 뜁니다.

 

                                         2005. 1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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