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낯선 바람따라

2002년 7.25~8.22(31) 유럽-독일 뮌헨

낭가 2012. 9. 10. 15:28

 

23)  8월 15일(목)  : 독일 뮌헨

맘에 드는 뷔페식단으로 느긋하게 아침을 먹고 길을 나선다. 시원한 바람과 햇살이 좋다.' 칼 광장'의 단순하면서도 창의적인 분수에서 한참 앉아 놀았다.  도심의 분수도 공원과 같은 구실을 한다고 생각한다. 우린 왜 이런 분수가 없을까.

'칼 문'을 지나 독특한 동상 앞에서 사진도 찍으며 천천히 걷다보니 성당에서 사람들이 나오는데 장례미사를 본 듯 향내가 진하다. 조금 더 걸으니 뮌헨의 상징 15세기 고딕식 쌍탑인 '프라우엔 교회'가 나온다. 일요일도 아닌데 왠 미사? 생각해 보니 오늘은 8월 15일, 우리나라는 광복절이고 여긴 성모 승천 축일로 휴일이다. 그래서 가게문도 거의 닫아 한적했구나. 미사중인 교회 안은 아담하고 깔끔하고 스테인드 글라스가 이쁘다.

보행자 거리에는 여러 가지 공연이 곳곳에서 펼쳐진다. 그룹 악단이 있고 솔로도 있고 마임하는 사람도 있고 마술사도 있다. 마리엔광장에는 더욱 그렇다. 11시에 있는 '시청사 인형시계'를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는 동안 노상 공연을 즐긴다. 한쪽에선 나찌주의자인듯한 사람이 '외국인들은 다 나가라'라는 요지의 연설을 하다 반론을 하는 사람과 언쟁이 붙었다. 세상에는 자신만이 최고라고 알고 있는 자들이 꽤 된다. 특히 독일인들 중에 더 그런 사람이 많은 듯하다.


11시가 되니 드디어 종이 울리고 음악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첨엔 좀 시시하게 느껴졌는데  인형들의 움직임이 점점 재미있고 음악도 경쾌하다. 마상 창 경기를 할 때는 탄성이 나온다. 한 5-7분 정도인데 마리엔 광장의 밝은 햇살과 시청사 건물의 꽃 장식과 어우러져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이자르 강가에서 점심을 먹고 독일 박물관을 들어갔다. 쉬는 날 이여서 인지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들이 많다. 1925년에 문을 연 이곳은 45000평방미터의 면적에 자동차 선박 항공 인쇄기 공예등 모든 과학분야의 물건이 꽉 차있다. '라이트형제의 최초의 엔진 비행기'도 있고 '쿠텐베르크의 금속활자'도 있다. 하나 하나 보고 다니다 보니 시간이 부족하다. 4층 중 겨우 두 층 봤는데.....

빨리 앞서 가다보니 아이들이 없다. 뒤돌아 가 봤는데 어디로 갔는지 없다. 그때부터 아이들을 찾으러 전 층을 오르락 거리며 돌아다니는데 너무 넓어 어디에 있는지 애만 탄다. 접수에 아이들을 잃었다고 하니 5시가 되면 다 나오니 출구에서 기다리라고 한다. 혹 얘들이 길을 잃어 못나온다면? 둘이 같이 있기는 한 걸까? 구석 어딘가로 들어가 못 찾는 거 아닐까? 별 생각이 다 들어 구경 할 맘은 다 사라지고 계속 맘만 졸이고 있었다.

5시가 가까우니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도데체 얘들은 어디 있는 걸까? 맡긴 가방을 찾아 출구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딸이 내려온다. 엄마가 안보여 오빠랑 찾으며 구경 다녔다고 한다. 밖으로 나오니 이국에서 혹시 얘들이 잘못되면 어쩌나 하며 마음 졸이던 긴장이 풀어져 눈물이 펑펑 났다.

한편 반성도 했다. 내가 아이들을 너무 과소 평가 했구나하고. 이제 3살짜리가 아닌데, 자기 일은 자기들이 해결할 줄도 알 나이가 됐는데, 내가 아직 너무 아이로 생각하고 믿지 못하고 있구나하는 ...... 한편 부모와 헤어져도 별 두려움 없이 다녔다는 것이 대견하기도했다.


별로 사람이 없는 길을 한참 걸어 '영국식 정원'을 찾았다. 조금 안쪽에 있는 호수에는 물오리와 백조들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일광욕을 즐기고 있다. 입구의 다리 아래에 꽤 물살이 세찬데 그 곳에는 써핑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었다. 물결을 타고 물을 가로질러 왔다 갔다 하는 것인데 물을 따라 흐르는 것이 아니라 가로로 계속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많은 사람들이 구경하고 있어서 한참을 구경하다 안쪽을 들어가니,  정말 홀랑 벗고 누워 나체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 이제 워낙 많은 사람을 봐서 그냥 신기하다 할 뿐이지 별다른 호기심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아이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하다. 우리는 맨발로 풀밭을 한참 걸어다녔다. 한쪽에선 공연인지 노는 건지 음악 연주를 하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도 많았다. 공원 밖 한쪽에 통일이 되면서 부서진 '통곡의 벽' 한 조각이 서 있고 그 아래 꽃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조금 걷다보니 갖가지 꽃이 심어진 또 다른 예쁜 공원이 나온다. 꽃밭 가운데 만들어져 있는 정자(?)에서 현악4중주의 연주가 한참이고, 지나가던 사람들은 벤취에 앉아 음악감상을 하고 있다. 온 나라가 늘 음악과 꽃과 나무에 묻혀 살고 있다. 너무 좋은 음악에 한참을 감상하다 다시 길을 나선다. 교통 통제를 해 놓은 곳이 있어 가봤더니 영화를 찍는다. 비 온 후인지 길에 물을 뿌리고, 주인공은 도로를 가로질러 어느 가게 앞에서 한참 물건을 바라보는 장면이다.

짐을 찾아 역으로 갔다. 10시 49분 암스테르담행 쿠셋을 타기 위해서다. 이번엔 우리가 2, 3층이고 서양여자 둘이 1층이다. 하늬가 3층서 자고 싶다고 한다. 1층에 있는 아가씨는 유럽인으론 드물게 옷차림이며 말씨가 참 얌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