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낯선 바람따라

2002년 7.25~8.22(31) 유럽- 체코 프라하 2

낭가 2012. 9. 10. 15:26

 

21) 8월 13일(화) : 프라하

채 정신이 들기도 전에 요란한 경보 싸이렌 소리에 잠을 깼다. 온 나라가 마치 야간 기습을 당한 것처럼 야단이다. 전기도 안 들어오고 수돗물은 붉은 황토색이다. 이게 왠일일까? 덜컥 겁이 났다. 내려가 보니 식당에 사람이 바글 바글한데 아침이 겨우 빵과 치즈 고기 한 조각씩이다. 홍수주의보가 났단다. 겨우 자리 찾아 아침 먹고 배낭을 챙겨 나왔다.

비는 조금씩이지만 계속 오고, 내리는 비로 봐선 홍수까진 아닌데 아마 강 윗동네 쪽에서 많이 왔나보다. 트랩과 메트로는 안 다니고 택시만 다닌단다. 시내 구경 삼아 걸어갈 생각으로 길을 나섰다. 어차피 오늘 저녁 기차를 타기 전에는 이곳에서 보내야 하니까. 한국여자 두 명이 길을 모르니 같이 가도되냐고 묻는다. 알고 보니 같은 시간에 뮌헨행 기차를 탄다. 지도로 방향을 잡아가다 애매한 곳은 길을 물어 대충 손가락질하는 방향으로 간다. 어떤 사람은 아예 가던 길을 접고 역까지 데려다 주었다. 감사의 표시로 태극무늬가 그려진 키 홀더를 줬더니 무척 좋아한다.

중앙역에 도착하여 짐을 맡기는데 코인 로커가 안전치 않다고 하여 유인 짐 맡기는 곳에 맡겼다. (다른 곳은 대개 개수 당으로 계산을 하는데 여긴 짐 무게로 15kg까진 15kc, 이상이면 30kc을 받는다.) 나갈 표를 끊고(어른 2명*84+아이 2명*42=504kc)보니, 날짜만 있고 시간도 열차 번호도 없다. 뭘 타든 24시간만 유효한 표. 같이 짐 맡긴 아가씨들은 독일서 표를 샀는데 8유로/1인 줬단다. 산 사람 마다 똑 같지 않으니 뭐가 뭔지 모르겠다. 표 값은 신용카드는 물론 유로, 달러도 안되고 오직 코룬만 된다.

11시 20분 역을 나와 신시가지의 중심인 '바츨라프 광장'으로 향했다. 가는 길 왼쪽으로 오페라 하우스가 보이고 광장 위쪽엔 박물관과 최초의 왕인 '바츨라프 기마상'이 있다. KFC에서 점심을 먹고 750m 꽃길을 따라가니 모차르트의 '돈 지오바니'를 초연했다는 '스티보프스케' 인형극장을 만났다.  1시간 30분 동안 한다니 보고싶긴 하다. 하늬가 줄 인형 하나만 사주라고 계속 조른다. 가져가기가 힘들어서.... 옆의 가게에 첨 보는 'Gyros'라는 음식을 팔고 있어 사먹었다. 짜빠티에 케밥을 넣고 야채를 넣어 싸 먹는 건데 독특하고 맛있다.

아이 쇼핑하다보니 '얀 후스 동상'이 있고 14세기 고딕양식건물이 있는 구시청사 광장에 왔다. 광장을 둘러싼 '성 니콜라스 교회'와 '틴 교회'가 보인다. 매 정시에 나타나는 '천문시계'의 12사도를 보기 위해 이곳엔 많은 사람이 모여 있다.  이 곳 저 곳의 가계 문 앞에는 물 방지를 위해 모래주머니를 쌓아놓고, 광장 한편에선 군인들이 계속 모래주머니를 만들고 있다. 비가 계속 오긴 해도 많은 비가 아니여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아마 이곳이 하류인가보다. 계속 경보 사이렌이 울린다.

2시가 넘어도 12사도는 나올 줄 모르고 안내방송도 없다. 어제 기차에서 쫓겨난 학생 둘을 만났는데 있는 코룬 다 털어 주고 2등석에 앉아 왔단다. 얼마인지는 안 알려준다. 아마 꽤 줬나보다. 어차피 저녁까지는 이곳에 머물러야하니, 도로까지 막아서 통제된 곳을 넘어 이곳 저곳을 헤매고 다닌다. 유대인 교회도 잠겨있고 거리의 모든 곳이 거의 닫혀져 갈 곳이 없다. 프라하성으로 가는 모든 길이 다 통제상태. 카를교 앞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모여있다. 다리 아래를 보니 집들이 지붕만 남긴 채 잠겨있다. 아마 어제 밤 우리가 지나간 길도 다 물 안에 있겠지.

춥고 갈 곳도 없어 맥도날드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시간을 보내다 지도를 보니 지나친 곳에 국립극장이 있다. 다시 왔던 길을 돌아 국립극장을 보러갔다. 특히 지붕이 독특한 장식으로 되어 있다. 옆이 바로 강가여서 많은 사람들이 구경하고 있었다. 탱크까지 길에 서있다. 교각에 기다란 철근이 걸려 있어 그것을 치우느라 포크레인과 구조대가 다리 위에서 작업하고 있었다. 너무나 많은 쓰레기가 떠내려 오고 교각에 걸려 있어 쉽지가 않다.

다시 바츨라프 광장으로 나와 하늬가 원하는 줄 인형 하나 사고 슈퍼에서 장을 봤다. 계산하다가 키위 값이 생각보다 비싸길래 뺀다고 했더니 갑자기 책상을 치고 한숨을 쉬며 코를 풀고 엄청 화를 낸다. 사람 무안하게끔.......  한참을 한숨쉬더니 일어나 열쇠를 가져오더니 뭔가 작업을 한 뒤 다시 계산을 했다. 취소하기가 힘든 모양이다.히유~~ㅜㅜ

기차역으로 와서 짐을 찾고, 남은 돈 털어 슈퍼에서 음식을 사서 저녁을 먹는다. 다른 곳보다 이 기차역이 가장 더러워서 펼쳐놓고 먹기가 좀 찜찜하다. 노숙자도 많아서 경찰이 돌아다니며 내 쫓는데 한 쪽에선 싸운다. 10시08분. 100년 만에 처음이라는 홍수로 물에 잠긴 프라하를 뒤로하고 드디어 뮌헨행 쿠셋이 출발했다. 씻으려고 화장실을 찾는데 문이 다 잠겨 있다. 첨엔 사람이 안에 있어 잠긴 줄 알았다. 한 참을 기다리다 다른 곳의 화장실을 찾았는데 아직 문을 안 열었다는 다른 여행자의 말.

차장은 분명히 내가 화장실 앞에서 문을 두드리며 기다리고 있는 걸보고 있었는데도 아무 말도 안 했다. 좀 화가 나서 차표 검사를 하고 있는 차장에게 빨리 문을 열라고 했더니 자기가 바빠서 좀 기다리란다. 당장 열어달라고 하자, 열고 다시 갖다주라며 열쇠를 내준다. 그것도 모르고 잠긴 화장실 앞에서 기다린걸 생각하니 화난다.

 

 

 

같은 방을 쓰게 된 사람은 둘 다 미국인이다. 처음 인사를 나눈 사람은 우리가 한국인이라고 하자 스페인 사람이라고 했다가 웃으며 미국인이라고 했다. 월드컵에서 우리가 스페인을 이긴걸 두고 농담을 한 거란다. 두 번째 미국인은 무척 잘 생겼는데, 서로 같은 나라라는 걸 알자 반가워서 매우 큰 소리로 얘길 시작하여 가족과 친구얘기로 한참을 시끄럽게 했다.

3층에 올라간 미국인이 양말을 벗는데 발가락이 구멍나고 발목도 한참 늘어져 있다. 네 남자의 발 꼬랑내가 장난이 아니다. 일단 제 시간에 기차를 타고 프라하를 떠난다는 게 감사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