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낯선 바람따라

2000년 10.12~25(14) 안나푸르나 3

낭가 2012. 9. 10. 14:54

10) 1021()    뱀부-키미(2000) :12km

 

가는 길에 양털을 깎고 있는 걸 봤다. 올라갈 때 본 그 양들이다. 양의 머리를 나무대에 끼워서 움직이지 못하게 하곤 커다란 가위로잘라가는 모습이 뉴질랜드에서 전기가위로 털을 벗겨내는(?) 거완 아주 다르게 보인다. 체크포인트를 지나는데 1년에 46000명이 지난다고 쓰여있다. 촘롱으로 올라가는 돌계단이 몇 개인가로 50루피씩 걸고 내기를 한다. 계속되는 오르막이 하늘을 쳐다보게 한다. 대충 아리송한 것을 빼고도 2000개가 넘었다.

 

촘롱에서의 점심은 롯지에서 파는 현지식을 먹었다. 뭔지도 모르고 이름만으로 시킨 각자 음식을 맛보느라 즐겁다. 모두들 지치고 힘들어하면서도 점점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 헤어짐을 의미한다는 것을 안다. 오늘이 산에서 자는 마지막 밤으로 내일이면 포터, 셀파들과 헤어져야 하는 것이다.

내일은 시내로 나가기때문에 계곡에서 목욕을 했다. 물은 적당히 시원했으나...... 키미에서의 밤은 염소파티로 시작했다. 염소를 5천루피에 사서 구이와 탕으로 한잔씩 하니 얘기 보따리가 저절로 풀린다. 한 병씩 돌린 콜라에 포터들은 절로 어깨춤을 추고 무사히 일정을 해 냈다는 기쁨과 이별의 아쉬움이 렛섬필리리에 어우러져 그렇게 밤은 산 너머로 넘어가고 있었다.

 

11)  1022()    키미-비레탄티(1200) :9.1km

                            비레탄티-포카라(800) :전세버스로 이동

 

'으악'하는 소리가 아침을 깨운다. 임 선배의 배꼽에서 피가 났다. 어제 계곡에서 목욕을 했는데 그때 거머리가 붙어 밤새 빨았나 보다. 얼마나 먹었는지 통통한 거머리가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더란다. ! 나도 했는데.... 모두 비상이 걸려 여기저기 살펴봤으나 다행히 다른 사람은 괜찮다.

 

헌 옷가지며 양말등 주고 가도 되는 것들을 모았다. 포터들에게 주는 선물이다. 생필품이 부족한 곳이기에 이렇게 주고 가는 헌옷과신발은 다음에 뉜가가 줄 때까지 입고 또 입을 것이다. 모아진 것은 덴디씨가 연장자 순으로 나눠줬다.

 

거의 다 내려온 길은 길기도 하다. 가도 가도 끝이 없다. 덥고 다리도 아프고 동네 길을 몇시간씩 걷자니 짜증났다. 점심을 냉면으로 먹고 다시 시장통을 걸었다. 여긴 아리안 족이 많은지 얼굴이 다르다.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인도의 영화배우처럼 잘 생겼다. 제법 도회지처럼 큰 시장에 사람도 북적거리고 물건도 많고 산에 살다오니 영 낯설다.

그리고 드디어...... 길 끝 산 허리에 자동차가 보였다. 자동차 -문명을 대표하는 것. 처음 그것을 봤을 때는 그것이 뭘 뜻하는지 미처 깨닫지 못했다. 잘 알면서도 아주 낯선 것이 그곳에 있다는 것에 잠깐 당황되었다. 이제 우리의 산은 끝난 것이다.

 

도로에 올라서니 온통 차와 사람과 가게와 그리고 한 떼로 몰려다니는 염소들. 이곳은 개들까지 느긋해서 짖는 법도 없이 식탁 위에 엎드려 사람구경을 한다. '대우'가 만든 차에 짐을 싣고 포터들에게 임금을 지불한다. 그저 '나마스떼'하며 웃는게 다지만 그동안 정이 들어서 목이 메인다. 아쉬움을 두고 포카라로 .....  포카라에서 지하로 떨어지는 폭포구경을 했다. 100m쯤 아래로 떨어지는 물을 고개를 뻬고 보니 신기하다. 자살하는 사람이 있어서 철책을 해 놨단다. 입장료를 냈던가?

 

blue bird 호텔에 짐을 풀고 정리를 한다. 이제 안나푸르나의 산 냄새를 몽땅거려서 가방 깊숙히 넣고 안녕을 한다. 오랜만에 편히 쉬고 식사 전에 민속춤 구경을 갔다.그러나 무용단은 옷만 반짝이는 옷으로 바꿨을뿐 촘롱에서 본 것과 다름이 없었다. 구경 온 사람도 적고 내용도 빈약하여 썰렁하다.

 

12) 1023()   포카라-카트만두 :경비행기로 이동

 

물먹은 솜처럼 푹 퍼져서 일어나기가 힘들다. 오전엔 페화호 구경을 했다. 그림처럼 멋진 호수와 호숫가를 도는 자전거 하이킹을 할 수 있다기에 기대했는데 호수는 깨끗하지 않고 도로는 호숫가가 아닌 도로여서 관뒀다.

 

카트만두행 경비행기가 15인승으로 인원이 나눠져야 했는데 성개씨는 먼저 가야했기 때문에 우리는 호수구경은 재끼고 서점에서 그림과 책을 사고 장비점에 들러 모자와 장갑을 샀다. 여긴 등반을 하고 짐도 줄이고 경비도 조달할겸 팔고 가는 것들이 많아서 중고들이 엄청 쌌다. 중고라도 거의 새 것으로 탐나는 것들이 많았다. 팀원중 5명은 먼저 가고 나머지 사람들은 식당에서 '지글러'를 먹었다. 닭고기가 아주 맛있었다.

 

공항에서 기다리는 동안 짐 재는 커다란 저울에 올라가 몸무게를 잰다. 조금 빠진 사람, 더 는 사람등 각각이다. 체중이 같아도 군살이 빠지고 근육이 생겨 탄탄해진 느낌이다. 한참을 기다려 15인승 비행기를 타는데 오래되고 잘 흔들려서 조금 무섭기는 했다. 그 좁은 안에 스튜어디스도 있는데 타자마자 접시에 사탕과 솜을 내민. 다들 웃으며 솜으로 귀를 막고 사탕을 하나씩 빨며 간다. 멀리 우리가 내려온 안나도 보이고 그 곁의 많은 산들이 파노라마로 보인다. 새삼 다시 그립다.

 

두고 가야하는 많은 것들에 대한 아쉬움을 안고 계속 자울거리고 있는데 내 곁에 앉은 네팔인이 말을 건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어느 나라가 더 아름답냐고 묻는다. 그거야.... 'no comment'라고 하자 크게 웃으며 명함을 내민다. 네팔항공의 엔지니어다. e-mail 주소를 주고받고 30분간의 비행을 마쳤다. (집에 돌아오니 네팔에서 맬이 두개 들어와 있었다.)

 

카트만두의 soaltee 호텔에 짐을 정리하고 나오자 셀파인 노르부와 그 동생 푸르바가 와 있다. 푸르바는 고등학생인데 지금 축제기간 동안의 휴가라 아르바이트를 한 거란다. 방학도 있고 축제기간의 휴가가 이렇게 길다니, 언제 공부하냐고 못 말리는 우리네 관습으로 물었더니 그냥 웃는다.

 

각자 타멜시장에서 쇼핑을 하기로 했다. 그곳은 우리나라의 이태원같은 외국인을 위한 장터다. 이곳 지리를 알고 다니면 몰라도 너무 복잡하고 정신이 없다. 한가하게 구경할 시간이 별로 없어서 맘이 바빴다. 장비점에 들러 파일자켓들을 샀다. 디자인은 별로 맘에 들지 않지만 무지 싸서 많이 사고 싶지만 ... 

 

선물 몇 개를 사다 보니 저녁 먹을 때가 지났다. 전통 음식을 먹고 싶었지만 알 수가 없어서 그냥 가장 많은 사람들이 가는 식당을 찾았다. 네팔 속의 유럽이랄까! 온통 외국인 그것도 서양인만 눈에 띤다. 저녁을 먹고도 가게문들이 거의 닫힐 때까지 여기저기 구경을 다니다 보니 마약으로 눈이 풀어진 사람들이 군데군데 서있다. 삶을 낭비하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마지막으로 이곳의 명물인 '릭샤'를 타보기로 했다. 자전거를 개조해 만든 것으로 처음엔 신기한 기분에 탔는데, 오르막을 오를 때 땀을 뻘뻘 흘리며 페달질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냥 내려서 걷고 싶을 만큼 도무지 가시방석이다. 거의 암흑인 골목을 꼬불꼬불 잘도 간다.

골목엔 군데군데 사원도 많고 화장터도 있는 듯하다. 좀 무서웠지만 덕분에 서민이 사는 뒷길을 엿볼 수 있었다. 정한 돈에 더 얹어서 줬는데 내가 탄 것이 이 사람의 '운수좋은 날'이 되었으면 좋겠다.

 

13)  24일(화)    카트만두-방콕 :기내에서 잠

드디어 네팔을 떠난다. 처음 이곳에 도착한 것이 마치 몇 달 전 쯤인 듯 하다. 거리의 차 번호판을 읽다보니 마치 암호를 푸는 듯 재미있다.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 비행기에선 먹을 때 빼곤 거의 잠만 잤다.

점심때 방콕에 도착 잠시 쉬기 위해 호텔로 갔다. 방콕은 우리가 다녀온 네팔의 반대되는 도시로 산이 거의 없는 평지의 땅에 많은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길은 마치 서울처럼 온통 차로 이어지고 고층 건물과 아파트와 고가도로의 도시다. 비행기 시간이 자정이라 그동안 각자 자유시간. 쇼핑하는 사람, 맛사지 받은 사람, 그리고 그저 잔 사람. 이곳의 맛사지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는데 1시간짜리, 2시간짜리, 발맛사지만 받는 것도 있단다.

저녁엔 해물바베큐를 먹으러갔다. 거의 호수처럼 보이는 바다 곁에 지어진 식당은 온갖 해물이 다 있고 물 속엔 고기가 가득이였다. 마지막 밤을 아쉬워하며 건배를 한다. 한국인들이 많이 오는지 라이브를 하는 밴드가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부른다. 이국에서 듣는 한국노래는 반갑고 여기저기 커플 룩으로 다니는 신혼부부가 많이 보인다.    


14)   25일(수)   방콕-서울-광주

다시 본 광주의 아침은 어려서 헤어졌다 다시 만난 가족처럼 낯설지만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