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간: 2000년 10월 12일~25일(14일)
1) 10월 12일(목) 서울-카트만두 (한국보다 3시간15분 빠름)
17시 드디어 네팔항공을 타고 날았다. 언제나 맛있는 기내식과 멋진 노을과 솜처럼 깔린 운해가 왠지 좋은 예감을 갖게 한다. 19시30분 드디어 카트만두에 도착. 우리보다 발전되지 못해서 공항의 수준은 좋지 않았지만 새 세계로 들어서는 문이라 아주 반갑다.
네팔의 수도 이슬라마바드는 분지라 도시내의 매연이 거의 빠지지 않아서 늘 공기가 안 좋은 곳이다. 현지인 셀파인 '덴디'씨(37세)를 만났다. 내일부터 계속 걸어야 하기 때문에 배낭에 질 짐과 포터들에게 줄 짐을 분리하여 싸고 나니 자정이 넘는다. 이곳에서의 첫 밤이 가슴
설렌다.
2) 13일(금) 카트만두(고도 1200m)-포카라(800)-페디(1200) ;전세버스로
이동 페디-담푸스(1800) ;2km(2시간)
5시 30분. 모닝콜로 시작하는 아침.
7시15분 드디어 전세버스를 타고 '렛섬필리리(우리의 아리랑같은 전통 민요)를 배우며 트리본 하이웨이를 따라 간다.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라 길은 산 허리를 타고 돈다. 한쪽은 낭떠러지이고 길은 울퉁불퉁 흙 길이다. 산 허리 아래 구석 구석까지 사람들이 산다. 길가에는 망치 하나들고 하루종일 돌을 깨서 자갈을 만드는 사람들이 보이고 길가 공동 수도인 듯한 곳에서 옷을 입은 채 목욕하는 아가씨들이 참 신기하다. 골짜기 곳곳은 계단식 논이다. 쌀을 2-3모작을 한다니 먹는 걱정은 덜 할듯하다. 쌀 1kg에 25루피 정도 한단다.
넓고 잔잔한 트리슐리강을 따라 간다. 이 물은 인도로 흘러 간단다. 10시, 모글링에 도착. 이곳은 오른쪽은 포카라로 왼쪽은 인도로 가는 갈림길이다. 지나 온 길이 100km이고 남은 길이 120km. 멀리 마나슬루가 보인다. 땡 볕에 하얀 모자를 쓰고 있는 산이 눈부시다. 이제 히말라야에 왔다는 실감이 나기 시작한다.
1시, 안나푸르나의 입구로, 1400여개의 산봉우리가 있고 가장 아름답다는 포카라를 지나 페디에서 네팔사람들을 만났다. 우리와 함께 할 포터들, 요리사와 셀파들이다. 포터들은 개인당 40kg정도의 짐을 지는데 끈으로 짐을 묶고 조금 넓은 띠를 달아 이마에 대고 맨다. 신은 맨발에 발가락 고무 슬리퍼 하나면 아무리 급경사에 험한 길이여도 무사통과다. 다리는 가늘지만 누에처럼 통통한 발가락들이 다년간의 경력을 말하는 듯 하다. 급경사로 시작하는 첫 발자국에서 비를 만났다. 지금은 건기로 비 만나기가 드물다는데....
잠깐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빗방울이 아기들 주먹만하다. 비를 좋아하는 나는 행운의 징조처럼 느껴졌다. 길은 넓적한 돌계단으로 이어지고 허리춤에 닿는 돌담을 끼고 도는 길은 마치 소풍 나온 연인들처럼 아늑하다. 새까맣지만 맑은 동그란 눈으로 내미는 꼬마들의 손이 애처롭기보다 예쁘다. 아이들이 원하는 건 pen과 sweet, candy. 사탕은 미리 준비해 왔지만 볼펜은 여분을 안 가져와서 가슴에 달린 볼펜을 보고 주라고 손 내미는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2시간씩 걸어 학교 가는 학생들과 어두컴컴한 방에서 열심히 숙제하고 있는 아이들을 보니 네팔의 미래가 어둡게 느껴지진 않았다. 계단식 논과 밭에서 자라는 노랑과 연두 빛. 그 곁에 그림 같은 집. 그러나 그 안에 자리잡은 사람들의 삶은 평화로우면서도 고단해 보인다.
그저 감탄과 갑자기 풍요로워진 가슴으로 한참을 가니 오늘의 목적지인 담프스에 도착. 멀리 그러나 조금은 가까워진 모습으로 안나푸르나 남봉(7219m)과 히운출리(6441m), 강가푸르나(7485m), 안나푸르나3봉(7855m) 그리고 고래 꼬리처럼 치켜올린 마차푸차레(6993m)가 파노라마를 이룬다. 이제 저곳이 우리가 밟아야 할 새로운 세상이구나 생각하니 가슴이 울컥하면서 코가 찡하다.
롯지는 생각보다 깨끗하고 단정하다. 히말라야에서 이처럼 잘 먹고편히 자게 될 줄이야. 텐트까지 다 지고 다니다가 처음으로 불까지 때주는 설악산 봉정암에서 잘 때의 놀라움이 그대로 느껴진다. 드디어 산자락에서의 첫 밤. 가만 누워니 들려오는 산의 소리와 바람 냄새가 금빛으로 안겨오는 보름달과 어우러져 뭐라 말할 수 없는깊은 나락으로 빠지게 한다.
3) 14일(토) 담푸스-란드룽(1700) :10.4km
해 뜨기 전 아직 땅이 드러나 보이지 않을 때, 마치 천지창조의 첫 날이 그랬을 것처럼 멀리 밝은 빛이 있다. 썰렁한 새벽기운마저 잊은 채 넋을 놓고 바라본다. 짙푸른 하늘색을 뒤에 두고 빛나는 왕관을 쓴 하얀 산들이 내려다보고 있다. 경건함이 든다. 키친보이들의 "챠이"소리와 함께 해는 뜨고, 다시 걸을 준비를 한다.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나왔다 들어갔다 숨바꼭질하는 흰 산을 보며 걷는다. 바람은 시원하고 같은 길을 가는 외국인들과도 눈인사하며 히말라야를 걷는다. 울창한 숲과 골짜기의 물소리 그리고 경쾌하다 못해 시끄러운 매미소리가 지리산 깊은 길을 걷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잠시 넓어진 잔디에서 쉬자하고 보니 그 곳은 거머리천국. 모두들 엉덩이와 신발에 달라붙는 '주가'라는 이름의 거머리를 떼고 달아나느라 혼비백산. 우기에는 온통 길이며 나무에 거머리 천지라니 이 정도 인 것이 다행이다.
오늘의 쉼터인 란드룽에 도착하고 나니 또 소나기가 한참 쏟아진다. 아침에는 좋았다가 오후엔 구름이 피어오르고 흐려지는 것이 전형적인 히말라야 날씨다. 포터들은 짐을 내리고 자기들끼리 모여 웅크리고 앉아있다. 셀파들은 아주 간단한 영어를 알아듣고 말할 줄 알지만 포터들은 전혀 깜깜이다. 처음엔 모두 포터로 시작했다가 그중 머리도 있고 체력이 되면 약간씩 듣는 영어와 외국어를 배우고 그러다 쎌파로 승진하는데, 어디에서든 노력하지 않으면 그만큼 힘든 삶을 살아야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인 듯 하다. 엽서를 몇 장 샀다.
4) 15일(일) 란드룽-촘롱(2000) :6.4km
아침에 잠이 일직 깬다. 5시라고 해도 한국선 8시니 일찍이랄 것도 없지만, 아직은 한국 잠인지 새벽에 눈이 떠지니 좋다. 해뜨기 전 신선한 내음을 맡으며 꽃 사이로 보이는 흰 산이 반갑다. 금세 닿을 것처럼 서 있지만 다가갈수록 커지고 높아져서 긴장은 더 된다.
출발 5분전, 롯지 뒤에서 사진을 찍어준다는 이문기원장님의 말에 정리도 덜하고 뛰어갔다. 하얗게 메밀꽃이 피어있다. 새벽 안개와 더불어 흰 꽃에 흰 산이라.... 정말 좋은 그림이다.
출발직 후 modi kholi계곡으로 내려가는 길, 민가에서 장례를 치루는 모습을 봤다. 여럿이 둘러앉아 이마에 쌀을 붙이고 그릇에 쌀밥을 놓고 있어서 처음엔 결혼식인가?했다. 슬피 우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서 도저히 장례식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산지에 사는 이들은 주로 불교도로 화장을 하고 내세를 믿어서인지 죽음을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듯하다. 어딜 가든 온통 공동묘지인 우리의 산에 비해 무덤이 하나도 없는 산을 보니 좋다.
오늘은 거리가 길진 않으나 경사진 곳이 많이 나타난다. 그러나 걷는게 적응이 돼서인지 점점 잘 간다. 계곡을 건너는 다리 옆으로 바위를 치고 하늘로 오를 듯 부서지는 폭포가 장관이다. 그 곁에 있는 바나나나무. 계곡은 빙하가 녹아 흐르는 물의 한기로 인해 기온이 11도 밖에 안되지만 계곡을 건너 조금 올라오면 금세 15도로 오른다. 일본트레킹팀을 만났다. 외국에선 이상하게도 서양인들보다 동양인들끼리는 인사를 잘 안 한다. 특히 일본인하고는 더 그렇다. 어디서든 "자파니?"하고 묻는 인사말을 계속 듣다보면 자연 짜증이 난다. 우리가 좀더 노력해서 일본을 넘어야 이 인사가 끝나겠지만.
산사태로 끊어진 '뉴 브릿지'곁의 급조한 다리를 건너 쉬고 있는데 서양인 이 '뉴 브릿지'가는 길을 묻는다. 산사태로 다리가 끊어졌다고 하자 울상이 된다. 그 아래 '뉴뉴브릿지'를 만들었다고 하니 그제서야 하하 웃고 간다. 혼자나 둘이 다니는 여행객을 보면 부럽다. 대개 동양인은 우르르 몰려다니지만 서양인들은 혼자도 잘 다닌다. 어려서부터 독립적이고 넓은 세계를 봐왔기 때문일 것이다. 입은 옷도 자기들 편한대로 속옷(?)만 입고 빡빡머리인 여자도 있다.
'따무룽'을 지나 '지누'가 보인다. 영화속의 비버리힐즈 별장같다. 오늘의 점심은 티벳탄 브래드라는 '롯티'. 짜빠티는 불에 구운건데 이건 튀긴 것으로 맛이 좋다.(굉장히 주관적인 것임) 빵을 3개 더 주라고 해서 하나 더 먹고 두 개는 가다가 먹을 간식으로 배낭에 넣다. 롯지마다 티벳인 장사가 많다. 인도인은 시내서 사업을 하고 네팔인은 농사를 짓고 티벳인은 산 속에서 장사를 한다. 나라가 힘이 없으면 그 국민도 고생이다.
4시 '촘롱'에 도착했다. 롯지마다 외국인이 넘치고 꽤나 번화한 읍같다.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저녁에는 민속춤 구경을 했다. 동네사람이나 포터들 중에서 가무에 능한 사람이 나와서 노래와 춤을 추는 것으로 우리 팀이 판을 벌려놓으니 모두 구경와서 같이 어울려 모두의 잔치가 되었다. 놀 때만은 we are the world가 실감난다. 한참을 구경하다 방으로 돌아와 엽서를 썼다. 내일 mail-runner를 보낸단다. 아이들과 몇 몇에게 더 썼는데.....(결국 이 엽서는 아무도 받지 못했다. )
5) 10월 16(월) 촘롱-히말라야호텔(2900) :9.1km
한 없는 돌계단을 내려오는데 말똥이 기차놀이하며 선을 긋고 간다. 이곳의 수송수단은 말인데 조랑말보다는 크다. 얼마나 힘든지 있는대로 혀를 빼고 배가 등에 붙을 만큼 숨을 헐떡거린다. 그래도 채찍으로 때리는 일이 없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몇 일전 비에 ABC(annapurna base camp)에는 눈이 왔다는데 크러스트 되지 않으면 러셀하고 가기가 힘들텐데 걱정이다. 등반 자체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 길에는 갖가지 선명한 색의 꽃이 만발하고 삐뚤삐뚤 줄쳐놓은 것 같은 계단식 논과 목청 좋은 장 닭, 이마에 띠를 댄 포터들의 모습까지 정겹다. 걸으면 덥다가 쉬는 즉시 땀이 식는다. 온도가 많이 낮아지고 계곡을 지나자 매미소리가 사라졌다. 그만큼 고도가 높아졌다는 얘기다.
9:30분 '시누아'-2340m에서 사과를 (20루피)사먹었다. 작고 못생겼지만 정말 맛있었다. 가는 내내 음료수나 흔한 콜라 한잔 안 사먹었는데 사과는 굿~이다. 산딸기도 따먹고 여러 갈래 쏟아지는 폭포구경을 하다보니 파란지붕의 '뱀부2190m'다. 매미는 사라졌는데 파리가 많다.
'도반'에서 70대는 됨직한 노부부 3쌍이 흰 머리카락을 날리며 차마시는 모습이 설산과 어울려 멋지다. 언제나 나도 저런 모습으로살아야지.....
가다 쉬다 같은 길을 가다보니 만나는 사람들과 계속 만난다. 아일랜드에서 왔다는 한 커플과 인사를 나눈다. 혼자 와서 팀을 이뤄 다니는 사람들도 많아서, 한 팀의 국적이 제각각이다.
4시25분 드디어 이름도 멋진 히말라야호텔에 도착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해를 보는 시간이 3시간 밖에 안되는 곳이여서 금세땀이 식고 추워진다. 50루피면 뜨거운 물을 반 통 주는데 나는 땀이 식기 전에 찬물로 빨리 씻었다. 물이 얼음물처럼 차다. 자연으로돌아온 지금, 최소한의 것을 빼곤 되도록 문명의 냄새에서 벗어나고 싶다.
저녁을 먹고 댄디씨에게서 네팔에 대한 얘기를 듣는다. 네팔은 지금 2067년. 예수보다 67년 빠르게 태어나 이 나라를 품은 뉜가가 있나보다. 1년은 4월에 시작해서 3월에 끝난다. 그래서 달력의 앞장은 '1999-2000'으로 표시되어있다. 숫자도 아라비아 숫자가 아닌 아주 톡특한 기호로, 달력의 숫자를 읽다보니 재미있다. 인도의 경제적 영향력, 공산주의가 우세해서 북한대사관이 들어와 있다는 것, 관공서와 학교는 10시에 시작해서 4시면 끝나고, 식사는 하루 2끼와 중간 간식을 먹는다는 것등 현재의 네팔을 듣는다. 왕정으로 인한 부패는 심하지만 그것도 이 나라의 운명. 이렇듯 깊숙이 네모난 하늘을 이고 살고 있는 이들이 무엇을 생각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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