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낯선 바람따라

2000년 10.12~25(14) 안나푸르나 2

낭가 2012. 9. 10. 14:45

  

6)  1017()/ 히말라야호텔-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MBC3800) :5.4km

 

영하로 내려갔을까? 고인 물에 살짝 얼음이 얼었다. 고소증을 줄이기 위해 마신 물과 고소증세의 하나인 소화불량으로 밤중에 화장실을 드나드는 사람이 는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물을 마신다. 높은 고도에서는 에너지와 물의 소비가 많아도 사람의 감각은 채 그것은 느끼지 못한다. 그리곤 물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그 순간이 오면 이미 우리 몸의 균형이 깨져서 이상 증세를 가져오기 때문에 미리 자주 먹어야하는 것이다. 고도 2500m가 넘어가니 몸이 안 좋은 사람 몇 몇은 두통에 시달리며 체력이 뚝 떨어진다. 처음엔 두통과 소화불량으로 시작되는 고소증은 심하면 뇌수종 폐부종을 일으키며 사망에 이르는 아주 무서운 것으로 고소증세가 나타나는건 당하기 전엔 아무도 모른다.

 

'힌쿠'. 커다란 바위로 히말라야에 들어서는 길목이다. 옛날엔 여자와 죽은 짐승은 이곳을 지나 더 이상 갈 수가 없었다한다. 갈기처럼 길게 잘린 바위 결이 눈부시다. 힌쿠에 올라서니 마차푸차레의 꼬리가 보인다'데우랄리'쉼터의 찻값은 40루피, 콜라는 70루피다. 저 아래에서 이곳까지 지고 온걸 생각하면 그것도 싸다. 덴마아크 커플과 인사. 여자는 3개월 됐는데 카트만두에서 선생님이란다. 겸손해 보이는 모습이 이뻐서 한국에서 가져간 작은 하회탈모형을 줬다. 갑작스런선물에 무척 감사해 한다

 

얼음 터널을 만나다. 동산인줄 알고 오르려다 미끄러졌다. 겨우내 쌓인 얼음이 녹아서 터널처럼 된 모양이다. 그러나 다 녹기 전에 곧 또 다른 눈이 덮을 것이다.

잠시 숨었던 안나푸르나가 보이며 1230MBC(machha puchhare basecamp)에 도착했다. 금세 추워져 자켓을 꺼내 입고 뜨거운 차를 마신다. 셀파 장부(박영석씨와 칸첸충가를 오른 능력있는 셀파)에게서 네팔국기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난리부라스'라는 꽃은 32종이나 되는데 그중 짙은 빨강색이 국화란다.

      

점심을 먹고 몇이서 고소적응겸 ABC 정찰을 하러 갔다. ABC로 가는 길은 완연히 달라져서 나무는 거의 없고 수염처럼 긴 잡초가 노랗게 물든 길이다. 물은 빙하의 석회수가 침전되어 히뿌연하고 바람이 차다. 모레인 지대 제방을 따라1시간 30분 정도 가니 ABC가 보인다. 입구에 한글로 쓰인 인사가 반갑다. 몇 대원은 두통과 메스꺼움에 힘들어 한다. 내일 가야할 길을 찾으러 모레인 지대를 내려다 보니 이건 길이 아니라 절벽이다. 거의 수직으로 선 곳을 100m쯤 내려가야 하는데 40kg을 지고 내려 가야 할 포터들이 걱정이다.

 

 

멀리 보이는 타푸출리도 구름에 가려 루트가 보이지 않는다. 길을 찾고 구름이 걷히길 기다리다가 너무 시간이 가는 것 같아 나는 경험이 적은 두 사람과 먼저 MBC로 돌아왔다. 날은 어두워지고 저녁이 됐는데 나머지 대원들이 돌아오지 않자 셀파와 몇 명을 보냈다. 같이 가다가 혹 나까지 짐이 될까싶어 나는 기다리기로 하고 셀파들만 보냈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서 있으니 별생각이 다 난다. 이 넓은 히말라야에서 길을 잃은 건 아닐까? 뉜가 혹시 모레인 지대를 내려가다 다친건 아닐까? 가끔 보이는 불빛에 반갑다가 실망하기를 한참. 드디어 줄지어 내려오는 불빛이 보인다. 다행이다.

 

모두들 저녁도 못 먹고 기다리고 있었다. 식사 후 내일의 일정에 대한 회의가 있었다. 타푸출리 등반팀은 회의 후 등반에 필요한 장비를 챙긴다. 부산한 가운데 잘 다녀오라는 인사말과 챙겨주는 간식들이 고맙다. 이제 신발 끈을 매고 얼마나 열심히 걷느냐만 남았다. 적어도 남에게 짐은 되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에 두려움과 비장함 마저 든다. 두통이 없지만 두통약을 한 알 먹었다. 아직은 괜찮은데 언제 고소증세가 시작될지 걱정이다. 잠이 오지 않는다.

 

7)  1018()   MBC-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4100) :2.9km,

                         MBC-고소캠프(4800) :12km

 

5시 기상. 늦게야 겨우 든 잠을 털고 고양이 세수를 한다. 수돗가에 물이 얼어있다. 635분 출발 때 온도가 0. 어둠을 쫓는 걸음으로 힘차게 출발한다. 그러나 몸은 무겁고 가슴도 무겁다. 지금부터 48시간만 열심히 움직일 수 있기를.... 최대의 힘을 발휘하고 그리고 다음은 생각지 말자.

 

750ABC의 모레인 지대에 도착 길을 찾는다. 셀파 노르부가 따라붙었다. 고소캠프까지 가기로 한 임대원이 심한 두통으로 포기, 우리와 같이 가려고 왔단다. 20살 노르부와 17살 푸르바는 덴디씨의 처남들이다. 이른 아침이라 모레인 지대의 길이 얼어있어 내려가기는 조금 더 수월했다. 거의 서 있는 길을 무거운 짐을 지고도 고양이처럼 잘 내려간다. 이 길을 어떻게 내려갈까 걱정한 것은 괜한 기우였다.

 

얼음이 녹아 돌 무더기와 물 웅덩이가 된 모레인 지대를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능선으로 붙는다. 머리 위에 걸려있는 큰 돌덩이가 위태위태하다. 낮의 햇볕에 따뜻해지면 얼었던 흙더미는 녹으면서 돌들이 굴러 떨어질 것이다. 아주 위험한 지역이다. 히운출리 건너편에서는 눈사태가 나는지 대포소리가 펑펑난다. 능선에 올라서서 건너편을 보니 장관이다. 모레인 지대가 U자형으로 커다란 '스케이트보드'장처럼 생겼다

 

고소 증세로 두통과 구토를 하던 푸르바가 하산한다고 한다. 늘 고산으로 다니는 셀파지만 자기가 경험해 보지 않은 고도에 오면 또다시 고소증세를 겪는다. 잡풀이 많은 능선을 오르니 점점 식물들이 작아지고 적어진다. 보통의 땅에선 보지 못한 이상한 세계가 펼쳐지는 것이다. 긴 털을 늘어뜨리고 식물인지 동물인지 아리송한 풀이 E.T같다.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숨차면 숫자를 센다. 열까지만 세자. 그리곤 쉬고 또다시 열 걸음. 4750m. 지금쯤 다른 사람들은 ABC에 도착했을까? ABC와 교신을 하니 우리가 올라가고 있는 것을 망원경으로 보고 있다고 한다.

 

오후가 되니 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하더니 앞이 안보이게 구름 속에 갇혔다. 오후 240분 고소캠프에 도착했다. 모두들 고소와 싸우느라 지친 표정이다. 셀파 노르부는 고소증으로 머리 아프다고 늘어져 토한다. 내려가라니까 안 간단다. 셀파들은 올라온 높이가 곧 경력이라 경력을 만들려고 안 내려가고 버티는 것이다. 셀파 장부는 피켈을 들고 가더니 비닐에 얼음을 담아왔다. 우리의 식수다.

 

컵라면을 먹고, 5000m 고소캠프에 텐트 3동을 치고 식량과 장비를 정리했다. 사방은 몰려온 구름으로 기온이 뚝 덜어져 추웠고, 눈인지 비인지 모를 뭔가가 내렸다. 텐트 바로 위에서부터 눈이 쌓여있고 빙산처럼 탠트 피크가 보인다. 저녁 시간까지 2시간 정도 쉬기로 했다.

 

깜박 잤을까? 밥 먹자고 일어나라는데 머리가 깨질 듯 아프다. 아직까진 팔팔했는데 이제 시작인가 싶었다. 미역국을 말아 건네주는데 억지로도 먹을 수가 없었다. 머리가 아프니 속도 울렁거리고 만사귀찮다. 토할거 같아서 먹지 않고 그냥 자기로 했다.

 

저녁 8. 아픈 머리를 두드리며 비몽사몽하는데 다른 대원이 자는 옆 텐트가 소란하다. 도저히 견디기가 힘들어서 200m 아래로 내려간다는 것이다. 텐트를 개고 짐을 챙기는데 속이 울렁거려 도와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나와 성개씨는 참을만하여 진통제 한 알과 다이아목스 한 알을 먹고 그냥 자기로 했다. 오늘 밤 그리고 내일 하루만 잘 버텨다오. 별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세상은 별빛, 달빛과 눈빛으로 환하다. 히말라야의 바람은 힘 센 코뿔소처럼 텐트를치며 지나가고, 얼음 구멍으로 통째 빠져들 것만 같다.

 

8) 1019()     모레인 빙하지대 탐사후 MBC

                          고소캠프-락시피크5320m(타푸출리 관찰)-MBC

 

새벽 2.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니 머리가 언제 그랬나 싶게 폭풍우가 지나간 뒤 하늘처럼 개운하다. 그러나 다이아목스의 부작용으로 손발과 온몸이 쩌릿쩌릿한게 기분 나쁘다. 먹은 물에 비해 오히려 화장실도 안 가서 얼굴이 퉁퉁 부었다. 저녁을 못 먹은 터라 배가 무지 고팠다. 사탕을 빨면서 장비를 챙기고 아래 내려간 대원들을 기다렸다. 새벽하늘은 파랗게 빛나고 바람소리가 차다.

 

셀파 장부를 불러 물으니 내려간 사람들이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다한다. 출발예정시간인 4시가 되어도 대원들이 오지 않아서 장부에게 내려가 보라고 했으나 올라오기를 기다리라고 했다고 꼼짝 안하고 무전기만 붙들고 있다. 춥다. ABC와 무전연락도 안되고 아래서 잔 대원들에게 문제가 있는 건지 걱정이다. 서둘러도 빠듯한 시간에 늦으면 안되는데.....

6시가 되니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끓인 물을 들고 장부를 보냈다. 혹 도움이 필요한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야할 텐트피크를 몇 장 찍었다. 원래계획은 4시에 출발하여 정상에 오른 뒤 다시 고소캠프에서 자는 것으로 꼬박 24시간을 잡았다. 650, 햇빛이 비치니 따뜻해진다.

 

얼마 후 장부와 두명의 대원이 올라왔다. 한대원은 너무 힘들어 올 수가 없단다. 국내 산에선 날아다니는 사람도 고소엔 어쩔 수가 없나보다. 아침을 먹고 나와 두 대원과 셀파는 락시피크를 향해 출발하고 다른 대원들은 포터들과 하산하기로 했다.

한걸음 한걸음이 천근으로 뒤에서 뉜가가 잡아당기는 듯하다. 눈이 시작되는 곳에서 아이젠을 차고 장비를 추스린다. 눈 사면을 따라 또다시 하나 둘 셋........숫자 세기를 한다. 저 눈 구릉 뒤에는 뭐가 있을까! 나를 위로 위로 인도한 것은 바로 이 궁금증이였다. 그렇게 한 구릉을 지나면 또 다른 눈사면이 보이고 그 위에 서면 뭐가 보일까 궁금해하면서 계속 숫자세기를 했다. 해가 떠서 덥다.

 

1050분 정상에 섰다. 아무도 지나간 적이 없는 눈밭에 서서 사방에 8000m봉우리를 병풍처럼 둘러치고 서 있는 나. 왜 나는 이곳에오른 것일까! 5320m에 눈높이를 맞춰서 보는 세상은 다르다. 위에서 보면 세상은 참 작다. 더 많은 권력과 돈과 명예를 가지려고 애쓰는 것이 내 삶의 풍요완 큰 관계가 없다는 것을 금세 알게된다. 나 자신에 충실해지고 작은 서운함엔 하하 웃을 수 있는 담대함이 생긴다. 산과 더불어 나도 커진다.

 

앞에 보이는 텐트피크는 손닿을 듯이 보이지만 여기저기 구멍이 드러난 크레바스와 숨겨진 위험, 오만하게 힘껏 고개를 젖히고 있는 직벽이 만만한 상대가 아님을 실감한다. 고소적응이 되더라도 하루에 끝내기는 역부족 일듯하다. 시간이 되면 직벽 아래까지라도 가보면 좋겠지만 참 서운하다. 본대와 무전교신을 하고 하산을 시작했다. 원래는 ABC에서 자기로 했는데 고소증 때문에 힘든 사람이 많아져서 모두MBC로 내려왔단다.

 

고소캠프에 오니 강원도에서 왔다는 사람 3명이 있다. 본대는 3일 뒤에 오는데 텐트피크에 대한 정보를 묻는다. 포터들이 도망가서 먹을 것이 부족하다고 해서 남은 것들을 모두 주고 내려왔다. 점심때부터 구름이 올라와 오후가 되니 한치 앞도 안 보이는 안개 속이다. 삶이란 안개 속을 헤메는 것과 같다던 '헷세'의 시가 생각난다. 산의 옆구리에 난 길이니 조금만 헛 딛으면 절벽이지만 내리막에 고소 문제도 없으니 달리기하듯 모레인 지대까지 쌩~왔다.

 

돌 사이에 꼽힌 깃대를 보고 가는데 어디선가 길을 잃은 이가 있는지 소리를 지른다. 길을 잃으면 깃발이 흔들며 내는 소리를 듣고 찾아야 하는데 큰일이다. ABC를 지나는데 비가 오기 시작한다. 구름 올라 오는 시간이 날마다 빨라지더니 기어이 비가 온다. 고소 캠프엔 눈 쌓일텐데 강원도 팀이 걱정이다. 우리도 하루만 일정이 늦었으면 눈 때문에 무척 고생을 했을 것이다.

 

한참을 가니 키친보이 필립이 차와 비스켓을 가지고 마중 나왔다. 언제부턴가 특별히 내게 신경 써서 챙겨주는 마음을 따뜻한 '챠이'의 맛과 함께 잊을 수 없을 것이다. MBC로 가니 모두 반겨준다여래왈 "왜 갑자기 늙었어요?" 얼굴은 퉁퉁 붓고 피곤에 절었으니 오늘의 일은 그 말에 다 담겼다. 그래도 오늘은 가장 편한 잠을 자게 될 것이다. 하늘의 별이 더 빛난다.

 

 

 

 

9) 1020()   MBC-뱀부(2500) :10.9km

 

있는 대로 늘어져 눈이 안 떠진다. 여전히 얼굴은 퉁퉁 부어있고.....

 데우랄리 쉼터에 오니 벌써 구름이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내려오는 길은 느낌이 다르다. 올라갈 땐 등반에 대한 염려와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감이지만 내려오는 길은 짐을 덜어 편해진 어깨와 두고 가는 서운함이 엇갈린다. 히말라야호텔에서 점심을 먹고 130분 도반에 오니 비가 오기 시작한다. 어제의 비로 길에 물구덩이가 많다. 오늘의 종점 뱀부에서 여승 두명을 만났다. 둘이 여행을 하는 중이란다. 수도를 하는분이니 우리완 느끼는게 다르겠지.

 

롯지 안에서 맥주파티가 벌어졌다. 롯지 주인은 한국인이 오면 술을 몽땅 팔아주기 때문에 아주 좋아한단다. 우리 팀은 올라갈때 거의 술을 안 먹었는데 이제 모두들 풀어져서 서로 권하느라 바쁘다. 포터대장'아쇼쿠'와 여자 포터인 샤티마양 구룽(40), 그의딸 키스마양 구룽(15), 이모 먼 구마리(30) 그리고 물론 덴디씨와 장부, 셀파들 모두 신이나서 떠든다. 네팔과 히말라야와 등반에 대해서.............. 우리의 즐거운 산행을 도와준 포터들, 셀파들, 쿡과 키친보이들에게 감사의 말과 함께 ......... 비에 젖은 밤은 깊어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