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낯선 바람따라

2002년 7.25~8.22(31) 유럽- 파리(2)

낭가 2012. 9. 10. 14:56

 

3) 7월 27일 (토) : 파리-생트샤펠 노틀담성당 팡테옹 샹제리제거리 개선문

식당에서 아침을 10시에야 숙소를 나섰다. 10개씩 한 묶음으로 파는 전차표 '까르네'를 샀다. 전차가 들어올 때 페인트로 낙서가 되어있어 깜짝 놀랐는데 안에도 낙서가 많았다. 그러나 사람들은 조용히 책을 읽거나 신문을 읽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첫 예정지는 노틀담성당. 가는 길에 '생트샤펠'이 보이자 스테인드 글라스가 생각나 들어갔다.  1층만으로도 가슴이 뛰었는데 2층의 스테인드글라스를 보는 순간 ~~  높은 천장에서 길게 만들어진 유리 그림과 빛이 만들어 내는 신비한 황홀함. 말로도 글로도 표현 할 길이 없다. 가슴이 찡하며 울컥 눈물이 났다.

콩시에르쥬리(프랑스 혁명때 마리 앙뜨와네트왕비가 갇혀 있다가 처형을 당했다.)를 지나 200년이나 걸려 지었다는 노트르담 성당으로 와 길게 늘어선 줄로 무조건 서 보니 그쪽은 타워 올라가는 줄이고, 그 옆은 성당 안으로 들어가는 줄이다.

우리 가족은 나눠서 줄을 섰다가 타워를 먼저 가기로 했다. 타워로 가는 길은 좁고 가파르게 동글동글 올라가는 달팽이 길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르내렸는지 계단의 돌이 닿아서 반들거리고 가운데가 움푹 패여 있다. '빅톨 위고'의 소설 '노트르담의 곱추'로 더 유명해진 성당 안에는 엄청 큰 종이 그때 모습으로 놓여 있고 녹음된 종소리가 흘러나왔다.

타워에서 파리의 정경을 보니 개선문과 에펠탑과 많은 돔들로 가득 찼다. 여긴 집도 아파트도 관공서도 모두 유명한 건축물처럼 보인다 . 지붕 위의 굴뚝이 벽돌 색으로 조그맣게 널려 있는 게 이채롭다.

점심은 성당 앞에서 바게트 빵으로 먹는다. 사람들이 길가의 수도에서 나오는 물을 그냥 먹는게 보였다. 생수를 사먹어 보니 물 값도 장난이 아니던데 잘됐다싶어 빈 통에 물을 받아왔다. 그 뒤에 우린 내내 길가의 수돗물을 먹고 다녔다.

성당 안으로 들어서니 그 크기와 웅장함에 말문이 막히고 성가대의  맑은 목소리와 커다란 파이프 오르간에서 나는 소리가 마치 천상의 울림처럼 느껴진다. 한참을 앉아 들었다. 하루종일 들어도 좋을 듯하다. '파리나무십자가 소년합창단'의 그 소리다. 딸은 "저 소릴 가져가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라고 했다.

거리 곳곳에 휴식을 위한 공원이, 정말 쉴 수 있는 곳이구나 알 수  있고 쉬고 싶은 맘이 절로 들게 한다. 분수와 나무그늘과 꽃과 잔디. 그 위에 아무 거리낌없이 누워 있는 사람들. 길에는 자전거나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이동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곳엔 왜 파리나 모기가 없는 걸까. 정말 궁금하다.

팡테옹을 찾아가다 아담한 룩상부르 공원을 슬쩍 들여다보고 길을 돌아가니 소르본느 대학 이다. 학교는 마치 아파트처럼 담도 없이 건물로 여기저기 블록을 만들어 우리네 대학 그림과 다르다. 정문에 관광객 출입금지라고 써 있다. 문 앞에 남자들 여럿이 모여 있는데 그중 한 명이 여장을 했다. 아마 무슨 행사나 장난을 하고 있는 듯하다.

팡테옹의 건물은 처음 수도원으로 지어져 대혁명이후 거장들의 무덤으로 사용되는 곳이다. 그리스의 성전처럼 둥그런 기둥이 옆으로 쭉 서있고 4개의 기둥이 정면에서 보면 하나로 보인다. 벽면에 가득 찬 조각과 그림들이 있고 중앙에 과거와 미래가 만나는 것을 상징하는 조형물이 커다란 두 개의 공으로 표현되어 있다. 지하에 묘가 있는데 근래에 '앙드레 말로'의 묘가 생겼다는데 못 찾았고 볼테르 루소 에밀졸라 퀴리부부의 묘를 찾았다. 퀴리부인 건 석관인데 꽃이 놓여 있다. 정말 그 안에 사람이 있을까?

그늘은 시원한데 햇빛이 뜨겁다. 길가 슈퍼에서 콜라를 사먹는데, 가져 갈 건지 앉아서 먹을 건지 묻는다. 실은 앉아서 다리도 쉴 겸 콜라 한잔하려고 했는데 값이 다르다니 'out'해야지.

사들고 도로 가에 앉아서 마셨다. 세느강을 따라 길가에 엽서나 고서적 중고서적을 파는 노점상과 초상화를 그려주는 화가들, 마임공연과 연주을 하는 거리 예술가들이 많다.

루부르 박물관의 유리 피라미드 앞 물에 발 담그고 앉았다가, 튈러리 공원 그늘에 누어 아이스크림 하나씩 물고 잠시 쉰다. 이 나라에 사는 사람은 정말 축복 받은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난 선글라스에 모자에 거기다 양산까지 썼는데 이곳 사람들은 땡볕에 옷 벗고 누워있다. 비키니를 입고 누워 있는 사람도 있다. 일사병이나 열사병은 걸리지 않을까?

이 튈러리 공원은 대혁명때 왕실을 지키던 스위스 용병이 죽은 곳이다.(그 추모비는 스위스 루체른의 빈사의 사자상이다.) 루이 16세가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콩코르드 광장과 나폴레옹이 이집트에서 가져온 오벨리스크를 지나 샹제리제로 접어들었다. 축제 준비로 무대가 설치되고 거리엔 깃발이 나부낀다. 샹스 거리와 엘리제궁이 있는 거리를 합쳐서 샹제리제라고 부른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샹제리제 거리에서 저녁을 먹으려고 메뉴를 보는데 통 알 수가 없다. 불어뿐이니...  만들어진 음식을 보고 연어샐러드와 빵, 치킨샐러드를 시켰는데 그것을 적당히 나눠서 네 접시로 만들어 왔다. 샐러드를 시키면 그것만 주는 게 아니라 빵이나 밥을 곁들여 한끼를 만들어 준다. 이럴 땐 따로 빵을 안 시키면 빵이 같이 나오는데 물론 돈은 받는다. 생각보다 푸짐하고 맛있다. 특히 연어샐러드는 정말 맛있었다. 맥주 한잔으로 목을 축이니 빈속에 들어간 알콜이 순간 알딸딸하게 만든다.

여기는 밤 10시쯤 되어야 어두워진다. 그래서 사람들이 늦게까지 거리에서 지내나보다. 샹제리제 끝에 있는 개선문은 굉장히 크고 꺼지지 않는 불이 타고 있다. 도로에는 사람들이 가득하고 개선문 옥상은 10시30분이 되니 닫는다. 어두운 개선문을 서성대다 11시 넘어 다시 지하철을 타기 위해 걸었다. 아침에 일어나 종일 걷고 늦게까지 다니다 보니 애들 입술에 물집이 생겼다.
여행이란 힘든 거란다.

4) 7월 28일 (일) : 파리-루브르박물관 에펠탑

 

기다리는 시간을 줄이려고 9시 되기 전에 루브르 박물관에 도착했다. 벌써 줄이 길다. 보통은 8유로인데, 일요일은 5유로고 어린이는 무료다.  한국어 안내장은 없고 중국 일본어판은 있는 게 기분 나쁘다. 어디나 이렇게 한국사람이 많은데 말이다.

짐을 맡기고(무료)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간 1층부터 보기로 한다. 루브르는 뭐랄까. 너무나 많은 그림에 조각들. 하나 하나는 정말 위대한 작품인데 너무 많이 걸려있어 창고 같다는 느낌. 하나 하나를 제대로 볼 수 없다는 게 안타깝다.

 

1층의 Demon관을 보고 나니 2시간이 흘렀다. 겨우 1/12을 봤을 뿐인데.... 너무 시간이 걸려서 아깝지만 카다로그에 있는 것은 자세히 보고 다른 건 빨리 지나 치기로 했다. 길이 얼마나 복잡한지 안내 그림을 보고도 몇 번씩 길을 잃고 찾아다녀야 했다.

에어컨이 잘되어 있는지 썰렁한 온도에 오르내리다 보니 다리도 허리도 아프다. 이건 즐기는 것이 아니라 아예 고된 노동이다. 아이들은 지쳐 움직이기도 싫은 게 온 몸에 나타난다. 나갔다 올 수도 없어서 비싸더라도 식당에서 먹기로 했다. 간신히 찾아간 식당의 줄이 족히 한 두시간은 기다려야 할거 같다. 이럴땐 그냥 한 끼쯤 굶고 그림만 봐도 괜찮겠구만, 얘들은 배고프니 눈에 뵈는 게 없단다. 그러나 시간은 부족하고 상황이 이러니 그냥 다니기로 했다.

'미로의 비너스'를 찾아 헤매다 결국 물어봐야 했다. 비너스는 어깨가 깨지고 더러워진 채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간 정면에 서 있었다. 나보다 훨씬 키가 크고 통통하다.  딸은 보고팠던 것이라고 감탄한다.

이집트의 보물은 이집트보다 더 많을 거 같고 커다란 돌기둥을 어떻게 운반해 왔는지 그것이 더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힘있는 자의 약탈 현장이다. 영어 설명도 드물게 프랑스어로만 써 놓은 자만심 대단하다라는 말 외엔....  와! 하던 것도 이젠 보기에 지쳐서 심지어 Close된 지역에 감사할 정도다. 2,1층과 지하1층을 보고 나니 딸은 더 이상 가기가 힘들다고 주저앉는다. 야외 그리스조각상 곁에 앉혀두고 셋은 지하2층을 빠르게 돌기로 했다. 너무 많아서

 

지겹다.

4시 드디어 땡볕으로 나왔다. 9시부터 거의 쉬지 않고 7시간을 봤는데 그것도 간단히. 2시간이면 된다고 한 사람은 어딜 보고 다닌 거야? 안보고 그저 걷기만 해도 그 시간보다는 더 걸리겠다.

그늘에서 빵과 달걀을 먹고 튈러리 공원에서 쉬려고 어제 쉰 곳을 찾아갔더니 경찰이 잔디 밖으로 나가라고 한다. 강압적이진 않지만 쑥스럽다. 일요일 이여서 무척 사람이 많다. 쉴 자리를 찾아 세느강 쪽으로 가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어 보니 자전거 경주를 하는 중이다. 공원 옆길에 의자를 놓고 앉아 잠시 졸았다. 공원과 그 근처엔 철제의자가 많다. 쉬었다가는 곳이다. 혼자 일광욕을 하거나 책을 읽고 둘러앉아 얘기를 한다. 큰소리로 화내는 사람도 없고 바쁜 사람도 없다. 평화로움 그 자체인 듯 하다.

1시간 여를 쉬다가 세느강을 따라 가면서 에펠탑 쪽으로 길을 잡았다. 가장 오래된 다리라는 '퐁네프 다리' 도 보고 가장 아름다운 다리 '알렉상드르 3세 다리' 도 봤다. 다리 양끝에는 황금 기마상이 있고 가로등과 다리의 조각이 대단히 화려하다. 장식을 넘어 하나의 예술품이다. 다리를 건너오니 또 다른 황금 돔.

곳곳이 잔디밭이고 그 위에서 축구하고 먹고 노래부르거나 사랑을 속삭인다. 길가의 수도에서 물을 받아먹는다. 물을 트는 법이 꼭지 마다 다 다르다. 어떤 건 위를 돌리고 어떤 건 누르고 어떤 건 튼다. 그래서 쓸 때마다 이건 어떤 방법인지 궁리한다.

길의 신호등은 거의 무용지물이다. 차가 안 다니면 사람은 신호등에 관계없이 건너고, 사람이 건너면 차는 무조건 선다. 콩코드 광장 앞 도로는 6차선인데도 신호등이 없이 건넌다. 철저히 보행자 우선인 교통체계인가보다.

점심을 간단히 먹었기 저녁을 넉넉히 먹고 어두워지기 시작한 파리의 거리를 걸어 에펠탑을 향한다. 공원의 잔디에서 5분간 딩굴며 기분도 내고 분수 가에 앉아 쉬다가 에펠탑에 도착했다.

워낙 눈에 익숙한 거지만 가까이 갈수록 그 크기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타워에 오르기 위해 줄서는데 이제 아들은 으례 '어린이'가 되었다.(입장료 차이가 많이 난다.) 걸어가 보는 것도 괜찮을 듯한데 힘든지 아들이 못들은 척 엘리베이터 타는 줄에 선다.

115m 높이의 2층에서 내려다보는 파리는 정말 빛의 도시이다. 샤이오궁과 개선문 세느강 다리의 불빛이 정말 환상적이다. 시원한 바람과 함께 한참을 내려다보고 있으니 파리의 사람들이 모두 예술가고 사랑의 도시가 된 이유를 알듯하다.

이제 내려갈 시간. 아래서 올려다 보는 에펠탑은 황금빛이다. 메트로를 타러 가는 동안 내내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에펠탑과의 이별을 서운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