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다니던 직장을 타의로 그만두게 되었을 때, 부글거리는 화기와 약간의 우울증이 날 괴롭혔다. 그 사슬을 끊고자 여행을 떠올렸고 학교 다니는 두 아이를 남편에게 부탁하고 나선 길...
7월 11일 (일)
오후에 길을 나서서 대구에 도착. 비가 많이 오는 길을 물어 동부 터미널 근처의 찜질방에서 머물다. 혼자온 여행이라 여러가지 신경이 쓰인다.
7월 12일 (월)
아침에 깜빡 늦잠을 자서 부랴부랴 포항행 버스에 몸을 싣다. 50분쯤 걸리는 줄 알았는데 1시간 30분이 걸리는 바람에 겨우 시간에 맞춰 배 터미널에 도착. 10시, 배는 출항. 11시에 도동항의 파도가 세서 접안을 할 수 없다는 안내와 함께 회항. 12시 30분 다시 포항 도착. 점심을 먹고 내연산 보경사를 갔다. 비가 많이 온 까닭에 수량이 많아 십이 폭포가 멋지다.
7월 13일(화)
어제보다 더 바람은 센듯하나 다행히 배가 출항. 보통 3시간 걸릴 곳을 울렁 울렁 울렁대는 울릉도에 4시간 10분 만에 도착. 난생 처음 멀미를 했다. 울릉도에 첫 발을- 배멀미로 아무 정신없다- 내렸다.
저동에 예약해 놓은 민박집으로 가 잠시 쉰 뒤 근처의 <봉래 폭포> 구경에 나섰다. 천연에어콘인 풍혈에서 땀을 식히고
산림욕장에서 멋장이 키다리 나무를 만나며 폭포에 도착. 섬 주민의 상수원인 이곳은 그러나 철창으로 막혀 가까이 가진 못하게 되어 있었다. 비가 간간히 뿌린 탓에 안개가 가득한 폭포아래 잠시 있다가 내려와 산채 비빔밥에 호박막걸리 한 잔. 사오고 싶을 만큼 너무 맛있는 막걸리.
저동항으로. 저녁 운동으로 걷는 아줌마들과 달리는 사람. - 이 곳에도 마라톤 열풍이? .오징어 잡이 배에서 비추는 환한 불빛의 안내로 방파제를 올라 촛대 바위와 인사하고 낙서 가득한 흰 등대에 가족의 이름을 쓴다. 언제 가족과 함께 와서 이 글을 읽을 수 있을까?
7월 14일(수)
성인봉을 오르려 준비하고 나서는데 비가 온다. 버스 정류장의 사람들은 내 운동화를 보며 비가 올때 오르면 큰 일 난다고 하나같이 말린다. 어찌나 말리는지 낼의 맑은 날씨를 기대하며 오늘은 섬 일주를 하기로 맘을 바꾸고 버스를 탔다.
버스 기사님의 설명으로 1일권을 (13000원)을 샀다. 오늘 하루는 무슨 버스든 탈 수있는 표다. 가는 동안 기사님은 계속 설명을 해 주셨다. 관광버스처럼...
천부에서 나리분지 가는 버스로 갈아타고 나리 분지갔다가, 천부로 내려와 섬 일주 도로의 끝인 <섬목>으로 갔다. 가는 동안 관광버스 기사를 하셨다는 기사님은 전직을 발휘해서 공암, 딴바위, 삼선암, 관음도 등을 설명해 주셨다.
거기서 부터 걸을 작정이였는데 타고 가다보니 걷기엔 너무 시간이 많이 걸릴거 같아 잠시 구경 할 동안 아저씨에게 기다려 달라고 했더니 (버스를 ㅋ) 그러라고 하면서 바로 낚시대를 꺼내 바다에 던진다.
그 차를 타고 다시 나리 분지로 가서 산마을 식당에 들러 삼나물 회 한 접시와 씨앗막걸리 한 잔으로 점심을 하고 용출소 쪽으로 걸었다. 물이 많이 나와 수력발전소를 지었다는 용출소 길은 사람이 없어 호젓하다. 50분쯤 뒤 추산일가쪽으로 나오니 왼쪽으로 송곳산이 있는데 안개가 끼어서 끝이 보이진 않지만 그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오른쪽에 바다를 끼고 해안도로를 따라 걸으니 코끼리(공암)의 엉덩이가 계속 날 따라온다. 버스는 간격이 1시간 이상되어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한참을 걷다가 차를 얻어 탔다. 이 곳에서12년을 살았다는 아저씨는 오늘 처음으로 나리분지를 가 봤단다. 의외로 현지 사람들은 자기가 사는 곳 외에는 가보지도 않고 잘 모른다.
태하에서 내려 <성하 신당>을 보고 <황토굴> 보고-산호바위 올라가는 철계단은 태풍매미때 부셔져 수리중이였다 - <태하 등대>를 향해 올랐다. 길은 좋은데 다니는 사람이 없어 길이 나눠지는 부분에서 반대로 갔다가 다시 되돌아 나왔다. 그러나 어디나 산새소리가 늘 함께 하는 우거진 숲 속이라 몇 시간이든 그게 무슨 의미가 있으랴. 등대에서 바라 보니 멀리 펼쳐진 수평선과 웅포해안과 대풍령의 아름다움이 잠시 어지럼증을 일으킨다.
버스 시간을 맞춰 내려와 여러 이름의 바위들을 구경하며 남양으로 향했다. 남양에서 내려 바로 올려다 보면 <비파산>이 보인다. 세로로 길게 쪼개진듯 이어진 바위들이 아름답다.
사태구미 해안을 따라 걷다. 태풍때 허물어진 곳이 많아 여기 저기 공사가 계속된다. 간간이 있는 터널은 겨우 차 한 대 드나드는 크기여서 차가 오면 바싹 붙어 있어야 한다. 도로에는 신호등이 없는데 유일하게 터널에만 신호가 있다.
<통구미>까지 걸어 거북바위 앞에서 더덕쥬스를 두잔이나 마시고 향나무 자생지를 구경했다. 다시 걷다가 <몽돌해안>에서 정지. 포장 안 된 길이 비로 팥죽이 되어있는터라 걷기도 힘들지만 지나가는 차가 치는 진흙물창이 장난이 아니다.
시내버스를 기다리는 30분동안 몽돌해안에서 신을 벗고 고생하는 발가락에 바닷물도 넣어주고 바람도 쏘인다. 동그란 바윗돌이 내는 노래소리가 참 좋다.
우리처럼 많이 걷는 사람들은 버스 일주권을 살 필요가 없었다. 전구간을 다 타지않았으니 오히려 돈이 더 든 셈이다. 도동의 항구가 사람으로 시끌벅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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