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낯선 바람따라

2000년 1.14~22(9) 말레이시아, 싱가폴 2

낭가 2012. 9. 10. 14:28

3) 1.16일 :  키나바루 등정-시내로 하산


새벽 2시. 무거운 몸을 일으킨다. 같은 방의 아저씨들도 거의  못 잤단다. 애들을 깨우니 다행히 잘 일어난다.  주방에 팁 10링깃을 주고 뜨거운 찻물을 한 수통 얻었다. 빈속은 더 안 좋을 거 같아 컵 라면을 먹이는데 더 먹으려고 다투면서 생각보다 잘 먹는다.  잘 올라갈 거 같다는 말에 안심이 된다. 움직이니 다행히 머리도 깨끗해지고 힘이 난다.

2시 30분 출발. 별 물이 흐르는 듯, 별이 정말 많다. 깨알같이 작은 별까지 다 보인다.  내 생애 그처럼 많은 별은 처음이다. 그러나 가장 큰 별은 전에 겨울 노고단(지리산)에서 본거다.  

윗 산장에서 다른 팀을 만나 같이 오른다.  생각보다 애들이 잘 가질 못한다. 몇 걸음 걷고 쉬고 또 쉬고...다른 사람은 다 먼저 가고 달래고 힘주고 거의 억지로 간다. 길은 더 가파라져서 4-60도 경사바위를 로프를 잡고 오른다. 별은 많지만 달이 없어 해드랜턴의 빛을 따라 가는데 올라선 바위 길은 한 사람이 겨우 갈 정도여서 고소증세가 심한 사람은 발을 헛 딛을 수도 있을 것이다.

4시10분 3600m쯤에서   가이드가 애들을 내려보내면 어쩌겠냐고 묻는다. 올라오면서 되 돌아 가는 사람도 몇 명 있었기에  그래야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애들의 속도가 너무 안 나서 이 정도라면 가는 것도 문제지만 내려 올 때가 더 걱정이기 때문이다. 나는 히말라야를 봤고 더 높은 곳을 올랐기 때문에 사실 정상을 밟는다는 것엔 별 의의를 갖지 않았다. 다만 애들에게 높은 곳에서 보는 세상을 보여주고, 더 넓은 시야를 갖게되길  바랬는데 그것이 안타까웠다.

성개씨와 나는 서로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내려 갈테니 당신은 올라가 보라"고 하는데 박과장님이 자기가 데리고 갈테니 우린 올라 가라고한다. 하늬는 엄마와 같이 내려가겠다고 하고....한참을 망설이다가 우는 하늬를 달래서 박과장님과 보내고(3600m쯤 되는 곳으로 4시 10분이였다.)  


깜깜해서 아무 것도 안 보이는 바윗길을 로프만 보고 오른다. 10분쯤 가니 마지막 쉼터인 sayat sayat hut(3668.1m)가 보인다. 워낙 시간이 많이 지난 터라 빨리 서둘러 오른다. 많이 떨어져 있는 줄 알았는데 가다보니  사람들이 가고 있다. 그곳부터는 경사도 완만해지고 너른 바위 위를 걷는다.

 

드디어 5시 30분 정상인 Low's peak(4095.2m) 에 도달했다. 확실히 숨쉬기는 곤란해서 오는 도중 가끔 서서 깊은숨을 쉬어야했으나 크게 힘든 건 없었다. 정상은  너덜겅 지대처럼 큰 바위들이 흩어져 있고 준비가 허술한 독일인들은 담요를 둘둘 말고 눕거나 앉아 있다. 우리는 정상에서도 고소증세를 안 느꼈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어떤 이는  만취해서 걸을 때처럼 흔들리고 허공을 밟는 듯해서 쓰러질까봐 걱정했다한다

 

6시가 넘어가니 멀리서 해가 떠오르는 것이 보인다. 산에서 바로 뜨지는 않고 더 올라와 구름 위에서 뜬다. 늘 구름이 많아 바로 뜨는 해를 보는 건 어렵다고 한다. 더구나 비와 안개로 볼 수 없는 때가 더 많다하니 우린 운이 좋은 편이다. 일출은 언제나 가슴 설레게 하는거지만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아침을 맞는다는 건 정말 눈물나는 일이다.    


아직 다 밝아지지 않고 이제야 오는 사람도 있지만 6시 15분에 하산을 시작했다. 먼저 간 아이들이 걱정되서다.  이제 서서히 사물이 제각각의 모습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세상에, 정말 안 올라왔으면 얼마나 후회할 것인지...  희게 빛나는 바위가 가슴을 펴고 조그마한 자갈이 노래한다.  고깔처럼 솟은 바위산 옆으로 연분홍 연노랑 파스텔이 그림을 그린다. 저 길을 올라온 걸까?  삐끗하며 끝이 안 보이는 계곡으로 돌이 구른다. 밝아오는 아침 빛에 해맑은  얼굴로 눈뜨는 바위들. 잠깐의 오만에 반성하며 내려오다 보니 어두울 때 올라가는 것도 좋은 듯하다. 내려오면서 느끼는 풍경이 참 신비스럽다.

7시 20분, 산장에 도착하니 애들은 정신없이 자고 있다.

8시 40분 ,토스트2쪽 달걀 후라이와 쨈으로 간단히 식사하고  9시 30분 출발. 내려오는 길은 모두 가볍다.  정상에 선 기쁨을 얘기하고 올라 갈 때와 다르게 보이는 열대수풀들. 우리거완 전혀 다르게 생긴 나뭇잎에서 똑같은 모양의 야생딸기를 찾아 먹으며 오다보니  낯선 사람을 전혀 겁내지 않는 다람쥐가 보인다 늘 먹이를 얻어먹은 듯 다가와 손의 땅콩을 잘 먹는다.  모양은 우리나라 것과 비슷한데 조금 덜 귀엽고 털도 거칠다.

아 참, 쓰레기!  관리인도 안 보이는 곳이 왜 깨끗한가 했더니  같이 올라간 가이드들이 내려오면서 쓰레기통을 털어 가지고 내려온다. 이곳은 가이드 없이는 등반할 수 없고 가이드가 숙박을 챙겨주는 형식이라 이 나라 입장에서 보면 고용과 청소 문제 그리고 환경관리까지 하게 되는 아주 좋은 제도라고 생각된다  여행사를 통하지 않고 단독으로 가면 즉시 가이드와 숙박문제를  해결하기엔  조금 시간이 걸릴 듯하다.

저런 깔끄막이 있었나 싶게 가파른 길을 올라서니 탑폰 게이트도착. 꼬박 3시간이 걸렸다.

산 중턱의 중국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데 일부 사람들은 새벽부터의 등반과 하산이 힘들어 퍼져서 식사를 잘 못한다. 미안하게도 우리가족은 또 열심히 먹는다. 특히 애들은 콘스프가 맛있다고 두 번씩 먹는다.

호텔로 돌아와 짐을 풀고 한식당인 '아리랑'으로 갔다. 근데 어찌나 더운지 사우나 통에 온 듯하다. 오랜만의 한식이라고 모두들 김치가 반갑다. 점점 식사를 잘 못하던 하늬는 볶은 밥에 김치를 얹어 뚝딱 2공기를 해치운다. 하늘이는 어떤 음식이든 닥치는 대로 잘 먹는다. 생각 외로 하늬가 더 김치를 찾는다.

 

저녁 후 근처 슈퍼마켓에 갔다. 의외로 수입 과일이 많다. 가공 식품은 별로 없고, 분말 쥬스에, 식용 색소 물들인 얼음과자. 공책이나 기타 생활용품들은 우리의 어린 시절을 생각나게 한다.  파인애플 쥬스, 사탕과 사과를 샀다.
그 근처는 일방통행이 많아 바로 곁에 호텔을 두고 5분씩 돌아가야 하고, 또한 길이 사람위주가 아니라 차 위주로만 되어 있어서 도대체 어디로 걸어야 하는지 인도가 안 보인다. 횡단보도가 있지만  멀고 사람들은 대충 알아서 건너다닌다.
  
다니는 동안 버스를 볼 수가 없었는데 가이드 말에 의하면 자신도 버스를 타본 적이 없고 택시는 부르는 게 값이지만, 사람들이 순박해서 조금 얹는 정도(3링깃)지 바가지는 안 씌운다한다. 

4) 1.17일 :  사피섬에서의 휴식

 

사피섬으로 간다.  코타 키나바루시는 해변을 따라 길게  있고 아주 작은 곳이기 때문에 버스보다는 배가 더 좋은 교통수단 인 듯하다. 호텔 옆에 슈퍼가 있고 건너에 시장이 있고 그 옆에 배타는 곳이 있다.  구명조끼를 입고 배를 탄다. 작은 유람선도 있지만 주로 모터보트다.

건너다 보이는 섬 곁으론 수상 가옥이 해안선을 따라 이어지다가 방파제처럼 앞으로 나와 있다. 주로 먹을 것을 찾아 온 필리핀인이 많다는데  뉜가 오면 그 옆에다 집을 지어 수상 가옥군은  점점 길어진단다. 어떻게 바다에 네 기둥만을 세워 지은 집이 잘 버티고 있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식수는 빗물을 받아 쓰고, 쓴 물과 쓰레기는 그냥 바다에 버리면 큰 바다로 바로 연결 된 그곳은 썰물 때 그 쓰레기를 다 쓸어간단다. 가는 동안 바다를 보니 인간들의 그 더러움을 떠 안고도 깨끗하고 조용하다.  

보트로 한 15-20분 정도를 달려 드디어 섬에 도착.  가까이 가니 바닷물 색은 밝고 투명한 청록으로 돌아 다니는 열대어들이 다 들여다 보인다. 달력에서 보는 풍경 그대로다. 내려서면서부터 탄성과 설레임에 가슴이 뛴다.


이 멋진 바다에는 유락 시설은 물론  탈의실  샤워실등의 편의 시설이 없다. 점심을 먹기위해 펴놓는 의자 탁자도 그때마다 배로 실어오고 가져간단다.  창고를 지어 쓰면 편할텐데 ...(상업주의에 익숙한 나의 생각) 아무튼 그래서 이 자연이 유지된다고 보면 더 좋을듯하다.

야자 나무아래서 짐을두고 바다로... 그곳은 산호가 많아 스노클을 빌려 바다 속을 보니  정말 환상이다. 수면 위에서 바다 밑을 보는 거완 몇 십 배, 아니 보지 않으면 설명이 안된다. 지나는 고기는 눈 앞으로 다가오고 가끔 사나운 놈은 다리를 물고 간다. 현란한 색의 열대어와 같이 헤엄치는 기분. 조금은 징그럽게 생긴 해삼과 불가사리도 보이고 여러 가지 모양의 산호초가 신기하다.

 

인기척을 느낀 원숭이가 왔다. 사피섬의 숲에서 자연 서식하는 것으로 사람들에 익숙한지 경계를 안 한다. 과자를 주면 받아 먹는데 대장이 오면 모두 도망간다. 하늘이는 과자를 주다가 봉지째 뺏겼다. 가끔 사람을  공격하는 경우도 있다는데 가방을 가져가거나 몽땅 뒤지는 수도 있다한다. 어디서나 원숭이는 구경거리인지 애들은 구경하느라 바쁘다.


점심의 해물 바비큐는  바다 게와 오징어 가제등 기대에 못 미쳤다.

 

오후엔 모터보트가 끄는 낙하산을 타는 모터패러를 했다. 조금 비쌌지만 바다 한 가운데로 나아가  높은 곳에서 보는 바다는 또 다른 맛이 있다. 짙푸른 바다 색 안에서  큰 상어나 고래가 튀어 나올법한 느낌.   바나나보트는 길죽한 공기보트를 모터보트가 끌고 다니는 것으로 애들에게 위험할거 같아 안 탔는데 대단히 스릴만점이란다.

4시쯤 짐을 챙긴다. 이곳 햇빛은 그리 세지 않아서 많이 안 탄다는 말을 듣고 겉옷을 안 입었더니 피부가 빨갛다. 수건으로 대충 닦고 옷을 입는데 하늬 랜드로바가 안 보인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원숭이가 가져갔을 거라고들 한다. 육지로 와서 신을 사려고 하니 일단 맞는 것이 없다. 공산품은 값도 비싸지만 구하기도 어려운 듯하다. 발에 맞는 걸로 고르고 보니 밑창이 스폰지로 된 길거리 패션이다. 그나마 맞는게 있어 다행이다.

호텔은 구정준비인 듯 조화를 붙이고 폭죽과 빨간 봉투거는데 한창이다. 상권은 거의 중국인 것이고 사는 사람도 6-70%가 중국인이고 보면 모든 것이 중국식으로 하는 데에 의의를 달수가 없다. 결혼식을 하는 광경을 봤는데 이브닝드레스를 입은 신랑 신부가 대단히 호화롭다. 이곳 사람은 주로 호텔에서 결혼식을 한단다.  

저녁은 말레이 식당이라는데 전통음식이 없어서인지 주로 중국식이다. 탕수육 비슷한거와 야채 해물조림. 이곳은 날씨가 덥고 맞벌이가 많아 주로 외식을 한다고 한다. 길에는 거의 모든 반찬을 즉석에서 만들어 팔고, 수산시장에서는 생선도 구어 판다. 퇴근하고 들어가면서 반찬을 사가든지, 씻고 나와 저녁을 먹으러 가는 게 이곳사람들의 식생활로 생일같은 아주 특별한 날에는 사람을 초대해서 집에서 만들어 먹는다고 하니 우리완 반대 습관인 듯하다.

산책겸 호텔 근처를 걸었다. 길에는 포장마차처럼 생긴 그러나 규모는 대단히 큰 노천 음식점이 많다. 한 번쯤 사 먹고 싶었으나 일단은 배가 불러 먹고 싶지가 않았다. 넓은 터를 낮에는 놀이터처럼 동네 사람들이 놀고 저녁이 되면 차양을 치고 식당이 된다하니 그것도 좋은 생각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