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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1999년 8월 충북 영주,제천, 단양

낭가 2012. 9. 10. 15:50

 

8월4일-8일 :

목포 해양박물관(모형배 전시회)-서울 63빌딩(아이맥스'에베
레스트')-청주 '은진'네 -고수동굴-소수서원-부석사-도담삼

 

봉-송계계곡 -덕주사-월악산(1097m)-영봉 동창교-계곡 물놀이 -청풍문화재단지-제천 의림지



8월 5일(목)

태풍 '올가' 때문에 늦어진 여행. 일단 서울로 가기로 한다. '아이맥스'영화관에 가기 위해서다. 서울을 생각하면 시끄럽고 공기 안 좋은 게 맨 먼저 떠오르지만, 그래도 생각나는 건 아이맥스 영화관이다. 특히 지금 하는 것은 "에베레스트'로 실제상황을 찍은 거라 더 보고싶었다.


영화는 대단하다. 눈앞으로 밀려드는 눈사태는 앉아서 보는 나를  현기증 나게 한다. 언젠가 눈 위에 미끄러질때 피켈로 제동하려고  애쓰며 아이와 가족을 떠올렸던 순간의 기억이 스친다. 그곳에 내가 있는 듯 가슴이 서늘하다. 죽음 직전에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기의 이름을 지어주며 부인과 전화를 하는 모습은 넌픽션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극장을 나와 바로 청주로 향했다.

 


8월 6일 (금)

청주를 출발해 충북 단양군 대강면의 고수동굴(천연기념물 256호)로 간다. 단양 지역은 동굴이 많다. 옛날 18년 전쯤에 온 적이 있는데, 다시 보니 반갑다.
4-5억 년 전 선사시대 거주지인 이 자연동굴은 1.7km로 온도가 15도 정도여서 더운 곳에 있다가 들어가니 썰렁하다. 애들은 말로만  듣던 종유석, 석순, 석주과 돌 꽃을 보며 입을 다물지 못한다. 마치 시간여행으로 다른 우주 공간에 와 있는 듯 하다. 몇 억 년 동안 만들어진 그 공간에 서 있으니 서늘함에 경건함이 더해진다. 동굴생물을 보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며 도담삼봉으로 이동.


단양 팔경중의 하나로 남한강 상류에 있다. 충주댐의 완공으로 물에 많이 잠겨 전 보다는 못하지만, 그저 건너다보며 유유자적 반나절쯤 앉아있으면 좋을 경치다. 잘 가꿔놓은 화단에 여름 꽃이 가득하다.


갔던 길을 돌아 나오면서 경북 영주시에 있는  소수서원(백운동 서원)을 들른다. 1543년 주세붕 선생이 안향 선생을 추모하여 모신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으로  생각보다 넓고 단아하다. 대청마루에서  한숨 청하고 싶게 한적하고 편안하다.


다음은 소백산 부석사. 사람들이 꽤 많이 찾나보다. 걷는 길 내내  먼지가 가득하다. 부석사는 676년(신라 문무왕) 의상대사가 왕명으로 창건하고 1580년에 사명당이 중건했다. 규모가 굉장히 큰절인데 올라가는 길목 계단의 부속건물이 멋있다.

그 계단 끝에 나타나는 '무량수전'은 우리나라 최초의 목조 건물로 국보 제 18호. 진한 황토 벽과 간결한 창살이 한 눈에 들어온다. 우와**^^! 건물 앞에 서서  내려다보이는 경치가 장관이다. 가부좌틀고 앉아 한참을 묵상에 빠져도 좋을 만한 시원한 대청과 구비 구비 파도치는 산자락의 부드러움, 세 모시처럼 넓고 푸르게 펼쳐진 하늘의 멋진 조화가 저 배꼽 깊숙한 곳까지 시원하게 한다.


이제 곧장 월악산 아래 송계 계곡으로 간다. 물을 좋아하는 하늬는  텐트 치는 일 보다 먼저 물에 들어가고 싶어서 야단났다. 집이 지어지기도 전에 옷 입은 채 풍덩. 넓고 편편한 바위위로 미끄러지는  깨끗한 물에 마음까지 시원하다.

그러나 여름의 어느 계곡이나 그렇듯이 사람이 너무 많고 시끄럽다. 정리하는 관리인이 있으나 겨우 주차정렬 시키는 정도다. 좀 더 깨끗한 환경을 만드는 강제(?)가 필요한 듯하다.


8월 7일(토)

아침을 먹고 월악산(1093m)에 오른다. 하늬는 새벽부터 언제 물에  가느냐고 성화지만 월악을 안 올라갈 순 없다.  초입에 있는 덕주사는 신라 패망 후 경순왕의 딸인 덕주 공주가 있던 곳이라 한다. 그리 크지 않는 규모에 이제 새로 짓고 단장하느라  새로 올린 나무냄새가 난다. 불자들의 생각은 어쩔지 모르지만 옛 절은 옛 모습 그대로, 작고 단아한 시골 아낙 모습으로 그냥 있으면  좋겠다. 분위기에 안 어울리게 등치 큰 모양새는 벼락부자들에게서 나는 돈 냄새가 나서 다가가고 싶지 않다. 


물 곁엔 사람이 북적이지만 덕주 산성을 올라보고 미륵사지를 거쳐 가는 길에는 사람이 별로 많지 않아서  홀랑 홀랑하다. 꽤 산세가 가파라서 통나무 계단을 놔진 곳이 곳곳에 많다. 가도가도 정상은 보이지 않고 이게 끝인가? 싶은 곳에서 멀리 거울처럼 빛나는 충주호가 보인다. 시원한 바람이 산행의 맛이지.

정상의 바위가 보인다. 높이 상으론 이제 다 왔을 거 같은데....애들은 빨리 산행을 끝내고 있을 물놀이 생각에 언제 도착하는지 자꾸  묻는다. 그러나 길은 거의 손 내밀면 정상이  잡힐 듯한데서 다시  아래로 곤두박질 치기 시작했다. 이 마지막의 맥풀림!!! 와@@! 이건 완전히 변견(便犬) 트레이닝이다. 이 곳이 탐험가 허영호가 난 곳이라는 사실이 실감난다. 우리가 무등산이나 월출산을 뒷산처럼  다니듯 이 산을 올랐을 테니까.


애들은 이제 그만 가자고 하지만 그럴 순 없지. 내려가서 아이스 크림을 사 준다고 보약(?)을 먹이고, 철사다리를 밟으며 내려갔다 올라가기를 몇 번. 드디어 하늘을 머리 위에 인 바위에 올라선다. (마음으로 지친 아이들 걸음으로 4시간 걸렸는데 어른들 만이면 3시간이면 충분할 듯. 미리 포기하지 마시길.)

정상은 올라온 고생에 비해 너무 초라해서 엉덩이 붙이고 앉아 쉴 자리도 없고 그늘도 없어 사진만 찍고 바로 내려 왔다. 햇빛은 쨍쨍하고 내려오는 길은 멀고. 동창교로 내려오는 길도 만만찮아서 내려가 물놀이 할 시간이 없다고 시무룩하다.


쉴 자리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물 속으로 으라차차! 한 여름이고 물이 깊지 않은데도 물이 꽤 차서 한 동안 놀다온 애들 입술이 파랗다. 저녁을 해 먹고 또 물 속으로. 추워서 덜덜거리면서도 물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는다.  


정말 계곡은 좋은데 어디서나 있는 예의 없는 사람들. 조금 시끄럽게 노는 건 애교로 봐준다 하자. 애들 노는 옆에서 빨래 비누를 박박 문지르며 빨래하는 사람은 개울에서 빨래하던 옛 추억을 되살리자는 걸까? 더욱 가관인 것은 커다란 LPG통을 가져와서 중국집에서 쓰는 큰 버너에 개고기를 삶는 거다. 여자들은 내내 고기 삶느라 땀 뻘뻘이고 남자들은 그저 자기 입에 들어가는 술과 고기 외엔 관심이 없다. 누린내가 진동을 해도 관리하는 사람조차 말이 없다. 외국에 나가

면 나 하나가 한국이 되고, 외국인 입장에선 나 하나가 한국사람 전체를 대변하듯이, 송계 계곡에서 만난 개 삶는 사람들은 이제 내 머리 속에서 충북 제천사람의 대표가 되었다. 그러나 그 외 관리는 잘 되는 듯 쓰레기 수거도 잘 되어 꽤 깨끗한 편이었다.

 

8월 8일(일)

제대로 물놀이를 못했다는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청풍문화재단지로 향한다. 이곳은 충주호가 만들어지면서 수몰지역의 문화재들을 옮겨놓은 곳이다. 주차를 하고 보니 정문이 잠겨있다. 일요일이라고 쉬는 걸까하고 돌아서려다가 언제 우리가 다시 올까 싶어 담을 넘었다. 그런데 안에 들어가 고가와 옛 물건들을 보러 다니다 보니 사람들이 꽤 있다.
이 사람들은 어디로 들어왔을까 궁금했는데 반대쪽에 후문이 있었다. 왜 그쪽 문을 쓰는지 궁금하다. 내가 정문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넓은 주차장이 있고 출입문도 크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드나드는 쪽은 말 그대로 쪽문이고 주차 할 곳도 없다. 산책하듯 여기저기 둘러보다 다시 주차장으로 와서 라면을 끓였다. 그늘이 없어 햇볕에 절로 익는다.


이제 돌아가야 할 시간. 가는 방향에서 조금 벗어나지만 의림지를  들르기로 했다. 삼한시대 김제 벽골제, 밀양 수산제와 더불어 3대  저수지였던 그곳이 얼마나 넓은 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의림지는 둘레가 2km로 생각보다는 작았지만 옛날 별다른 기계의  도움없이 이 넓은 곳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날 농민의 생명줄 이였을 저수지위를 보트로 한 바퀴를 돌았다. 밖에서 보는 것보다 꽤 넓다.

 

우리나라의 구석구석을 둘러보는 일. 우리의 역사를 하나하나 알아 가는 것. 그리고 그 안에서 나의 정체성을 깨달아 가는 것. 그것이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하는 이유가 아닐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