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낯선 바람따라

2002년 7.25~8.22(31) 유럽-바티칸

낭가 2012. 9. 10. 15:21

 

 15)  8월 8일 (목) :  바티칸

일찍 준비하고 나갔어도 9시가 다된다. 메트로 표 파는 기계가 몽땅 고장이다. 여기 저기 기계에 돈만 넣다가 뉜가 가게에서 표를 판다 해서 우르르 몰려가서 표를 샀다. 고장난 것은 고치지 않는 모양이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작은 액수의 동전부터 넣어서 돈을 딱 맞춰 넣어야 표가 나온다는데 해보질 않아서 모르겠다.

달려온 메트로는 세상에!!! SF영화에 나오는 괴물 같다. 유럽의 메트로가 대부분 그렇기도 하지만 이건 너무 심하다. 기차 전체에 여러 색으로 낙서가 거의 빈자리 없이 되어있다. 기차 안도 그렇다. 에스컬레이터에 소매치기 조심 그림이 붙어있다. 아침 일찍 메트로에 탄 사람의 대부분은 바티칸 여행자. 길을 몰라도 많은 사람들을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옥타비아역에서 내려 들어가는 첫 관문은..... 어디나 그렇지만 지저분하다. 광장을 지나가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줄 서있다. 1차 복장 검사는 하와이안 셔츠같은 요란한 색의 옷이나 반바지 민소매 배꼽티를 가려 내는 것. 반바지 차림의 우리 두 남자는 엉덩이까지 바지를 내려 7부를 만들어 통과했는데 성 베드로 성당입구에서 검은 양복차림의 사나이들이 또 잡는다. 양말을 안 신어서 안 된단다. 여자는 반바지도 괜찮다.  할 수없이 두 남자는 남고 두 여자만 들어갔다.

성 베드로 성당은 120년에 걸쳐 르네상스 시대의 유명한 작가들이 참여하여 만든 것이다. 안은 여태 봐 왔던 성당처럼 천장엔 금박의 장식과 조각, 벽면에 그림과 커다란 조각상들이 가득 있다. 다른 곳보다 수녀 신부님들이 많이 눈에 띄고, 밝아서 인지 노틀담보다 덜 엄숙하게 느껴졌다.

오른쪽 구석에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상이 있고 돔 중앙에는 베르니니의 작품 천개가 있다. 그 아래는 성베드로의 묘가 있고 왼쪽에는 좌상이 있다. 다들 발을 잡고 사진을 찍길래 우리도 찍었다. 모든 규모가 어마어마하고 아름다워서 이젠 입도 벌어지지 않는다. 화려하면서도 품위가 느껴지는 곳이다.

성당을 나오니 오른쪽 문으로 들어가는 줄이 길게 서 있다. 돈도 낸다. 서 있는 한국인에게 어디 가는 거냐고 물으니 어디 가는 줄도 모르고 그냥 서 있단다. (나중에 보니 아마 돔으로 올라가는 길 인듯하다) 박물관은 건물 돌아서 1km쯤 가야 한다는데.... 여자들만 들어가기도 뭐해서  미켈란젤로가 디자인했다는 옷을 입은 근위병과 사진을 찍고 발길을 돌렸다.

천사의 성과 천사의 다리를 건너 어제 못간 파라티노에 갔다. 어제 콜롯세움 입장표를 냈더니 구멍을 뚫어준다. 옛날 왕궁이라는데 건물은 거의 없고 돌덩이만 조금 있는 정원이다. 그곳을 나와 포로 로마로를 걸었다. 이젠 허물어져 옛날의 영화는 가고 땡볕 속에 커다란 신전과 궁궐의 기둥만 말없이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다. 소풍 나온 사람처럼 그늘에 앉아 빵에 고기 치즈 과일까지 넣어 햄버거를 만들어 먹고 쉰 다음, 진실의 입으로 가기 위해 '캄피돌리오언덕'을 올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청동 기마상'을 만났다. 미켈란젤로 작품인 '코르도나타'계단을 내려가니 오른쪽에 엄청난 건물이 서 있다. 빅토리오 엠마뉴엘2세 기념관이란다.


우선은 진실의 입이 목적이라 한참을 가다 잡지 파는 할아버지께 코스메딘 교회를 물으니 내 발음이 좋아서(?)인지 아님 워낙 많은 사람들이 물어서인지 금세 알아듣고 손을 입에 넣고 웃는다. 조그마하고 오래된 소박한 교회인데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하수구 뚜껑이였다는 그것은 영화 '로마의 휴일'덕에 유명인사가 됐다.  우리도 줄서서 기다렸다 사진을 찍고 교회로 들어갔는데 큰 규모의 성당만 보다가 작은 성당을 보니 참 정겹게 느껴졌다.


다시 빅토리오 엠마뉴엘2세 기념관을 찾았다. 그 크기가 너무 커서  이젠 감탄조차 나오지 않는다. 기념관의 계단을 올라가니 포로 로마로와 콜롯세움이 한 눈에 들어온다. 세상의 가장 큰 권력과 영웅이 머물렀던 곳. 그러나 이제 한갓 돌무더기로 남은 곳. 인생무상을  느끼게 하는 곳이다.

기념관 아래 부분은 무명용사의 묘가 있어서 꺼지지 않는 향불이 타고 있고 군인이 경비를 서고, 엄숙한 곳이라고 눕거나 앉지도 못하게 한다. 엠마뉴엘 2세 동상은 또 얼마나 큰지, 말 발톱하나가 내 머리 만하다. 큰 청동을 어떻게 균열이 안 가게 만들 수 있는지 감탄스럽다.

기원전 1세기에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전차경기를 위해서 만들었다는 나보나 광장으로 향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어디서  경기를 한 것인지 그럴만한 공간이 안 보인다. 4대강( 나일강, 갠지스강, 다뉴브강, 플라타강)을 의인화하여 만든 '베르니니의 분수'가  가운데 있고, 양쪽에 냅튠, 무어인 분수가 있다. 공연을 하는 사람들과 가죽으로 그림을 그려주는 중국인 4명 주위로 사람들이 몰려있다. 콜라 한 병과 피자 슬러시를 사서 가게 밖에 놓인 의자에 모른 척 앉아 먹는데 거의 다 먹었을 즈음, 주인이 나타나 앉지 말란다. 잠시 잘 쉬었다.


이탈리아 왕들의 묘지인 팡테옹 앞도 사람이 바글바글이다. 아주 오래된 건물인 듯 입구 위 천정이 나무로 되어있는게 인상적이다. 건물은 돔 형식에 가운데 구멍이 뚫려 있는데 비가 오면 어쩌나? 상승기류로 아마 비는 안 들어 올 거라는 성개씨의 말. 정말 그럴까?

트레비 분수 앞에는 더 많은 사람들로 거의 서 있을 자리도 없다. 대단히 거창하고 큰 분수  안에는 동전이 가득하고 아이들도 동전을 던져본다. 바로 앞의 젤라또 가게를 들어갔는데 얼마나 많은 한국인이 오는지 직원은 '맛있어요''쵸코랑 딸기랑''하나''둘'등을 한국말로 한다.

젤라또 물고 몸싸움을 해가며 사진 찍고 스페인 광장으로 갔다. 스페인 광장 계단엔 사람들이 앉아 쉬고 어떤 이는 긴 대롱 같은 악기를 불고 있다. 저음의 뱃고동 같은 소리다. 그 분수의 물을 아이들이 떠먹는다. 길거리 로마의 물은 잠그는 법 없이 다 열린 채 줄줄 나온다. 물이 그만큼 많다는 건지 제대로 정수가 되어 나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더 갈 곳은 많은데 종일 걸었더니 모두 지쳐서 움직이는 게 반갑지 않은 모양이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슈퍼에서 장을 봤다. 고기 값은 비싸서 조금 포장된 것으로 사고, 과일은 싸서 토마토(0.99유로/1kg)와 복숭아(1.33유로/1kg)를 샀다. 메트로를 타고 오면서 혹시나? 하고 어제 가지고 있던 표를 넣었더니 날짜와 시간이 찍힌다. 아마 어제는 기계들이 다 고장나서 안 되었나보다.

이탈리아 피자를 먹어보기 위해 들어간 곳은 일본인들이 많이 오는 곳인지 들어가자 일본인 직원이 일본말로 인사한다. 좀 비싸지만 오리지널 이탈리아 피자와 파스타를 먹어보자는 의도였는데 맛은 있었으나 양이 적었다. 로켓 셀러드는 그냥 향이 짙은 나뭇잎이고 봉사료가 따로 5.52유로 물 값도 2.7유로나 받았다. 옆의 일본인은 스페셜 메뉴를 시켰는지 풀 코스로 파스타 셀러드 스테이크 또..... 다음은 우리가 나와서 더 볼 수가 없었다.

42유로를 냈으나 배도 안 부르고 좀 찜찜하다.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두 남자는 배가 고파 낼 먹을 음식을 반쯤 먹었다. 의자에 앉아 격식 차리고 먹는 음식은 이제 끝. 너무 비싸다. 오랜만에 10시에 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