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낯선 바람따라

2002년 7.25~8.22(31) 유럽- 스위스 융프라우

낭가 2012. 9. 10. 15:01

 

12)  8월 5일(월) :  스위스 인터라켄-융프라우

한 밤중의 제네브cff역에 내리니 경찰이 여권검사를 한다. 지금까지 다녔던 유럽의 자유스러움과는 다른 경직된 느낌이다. 그렇게 도착한 스위스 역엔 의자가 없다. 그 많은 배낭족들은 다 어딜 갔는지 아무도 안 보이고 경찰이나 직원도 안 보인다. 여기서 6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어디서 보낼까.

여기 저기 있을만한 곳을 찾아다니다 결국 상가 앞 의자에서 자기로 했다.  밤새 서성대는 흑인들은 왜 그리 많은지. 서로 말다툼하며 싸우는데 내용은 잘 모르겠지만 구역 싸움인 듯하다. 웃기는 건 서로 멱살을 잡는 정도지 절대 주먹은 안 쓴다. 

 

몇 시간을 왔다 갔다 하다가 우리 바로 앞에 신문지를 깔고잔다.  온도가 꽤 찬데....

 

혹 우리에게 시비를 걸까봐 노심초사다. 소리가 나도 경찰이나 경비는 전혀 보이지 않고 노숙자도 꽤 있다.

여기는 유로화를 안 써서 기계에서 200스위스 프랑을 찾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찾은 게 아니라 빌린 것 이였다.)  6시가 다 되어  200프랑 한 장짜리를 잔돈으로 바꿀 겸 빵을 사서 인터라켄행을 탔다. 졸립진 않은데 웅크리고 앉아있어서 그런지 몸이 천근이다. 다행히 아이들은 잘 잤단다.

인터라켄 서역에 내리니 숙소가 바로 앞이다. 여전히 한국인은 시글시글하다. 어제 올랐다는 한국인은 아침 일찍 올라야 제대로 경치구경을 할 수 있지 좀 늦어지면 구름이 끼여서 아무것도 안 보인다고 한다. 지금도 늦었다는데 어쩔까 망설였는데 애들이 얼음궁전을 보자고 해서 가기로 했다.


짐만 맡기고 오스트역으로 와서 융푸라우로 가는 표를 샀다. 값이 비싸서 어른이 115스위스 프랑,(이것도 한국인 할인을 해서) 어린이는 20프랑이다. 생각보다 어린이 표가 싸서 좋다.

올라가는 길은 정말 환상적이였다. 툰호수와 브린저호수 사이에 끼어 있다고 해서 이름이 인터라켄인 이곳은 넓은 초원에 커다란 방울을 단 소들과 염소 그리고 고라니같이 날씬하고 예쁜 짐승들이 한가로이 풀을 먹고 있었다. 야생화는 어찌 그리 이쁜지.....

'라우터 부르넨'을 거쳐 '클라이네 샤이텍'에서 톱니 열차로 갈아탄다. 열차는 멋진 풍경을 지나 아이거와 뮌히의 바위벽을 뚫어 만든 길로 들어가 잠시 5분간 정차한다. 유리창 너머로 길게 뻗은 '아이게르' 빙하의 멋진 풍경을 보고, 두번째 정거장 '아이스메르'에선 '그린덴발트'빙하를 본다. 점점 추워져서 있는 옷 중에서 가장 두툼한 옷을 입었건만 찬 기운이 싸-아 하다.

로비로 들어가 한국인 특별 권으로 컵 라면 3개와 모자 1개를 타서 아침에 슈퍼에서 사온 것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오랜만에 먹는 한국의 맛에 감탄과 행복을 느끼며 엄청 맛있게 먹는다. 여기 저기 컵라면 먹느라 바쁘다. 로비의 절반은 한국인 인 듯하다. 엽서를 사서 유럽의 꼭대기에서 짧은 글을 쓴다. 쓸건 많고 공간은 적고 글이 엉킨다.

빙하를 그대로 파서 만들었다는 얼음궁전은 정말 대단하다. 좁은  미로 같은 반짝이는 길과 곰 새 천사상을 깎아놓은 작품들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있다. '스핑크스테라스'로 내려와 360도로 눈 덮힌 아이거와 뮌히를 둘러보는데 바람이 씽씽이다. 누가 이곳에 얇은 긴 팔이면 된다고 했는지...한겨울 방한복이 필요하다. 딸은 추워서 덜덜 떨고, 가지고 있는 건 다 입었는데도 찬 기운이 파고든다.

그래도 그냥 갈 순 없지. 밖으로 나와 눈썰매를 탔다. 5프랑을 맡기면 동그란 판을 주는데 나중에 판을 가져가면 돌려준다. 길이 움푹 파인 곳이 많아 꽤 격렬하게 내려간다. 몇 번 타니 바지가 다 젖었다. 7인승을 빌려 여행 다니는 한국인 가족을 만났는데 혼자 운전하고 다니니 힘들다고 한다. 유레일이 찾아다니기 불편한 점이 있지만 가는 동안 쉴 수 있으니 좋다.

바지가 다 젖어 추워서 안 나가겠다는 걸 여기까지 와서 안 가다니..... 플라토로 나갔다. 사방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눈 바위와 길게 펼쳐진 빙하. 그 위를 걸어가는 사람들. 성개씨는 꿈에 그리던 아이거를 보고 감격해 한다. 어제 잠을 못 자서 열차를 타는 내내 졸더니 바위를 보니 이제야 정신이 드나보다.

한참을 눈 구경에 미끄럼을 타다보니 이제 내려가야 할 시간. 너무 아쉽다. 낼 일정을 빼고 하루 더 있을까 생각해 본다. 겨울 방한복이 있으면 멀리 걷기도 하고 좋을텐데 .....

'클라이네 사이텍'에서 잠시 걸으며 소구경하고 '그린델발트'를 거쳐 오스트역에 내렸다. 낼 아침은 서역에서 타야하기 때문에 서역까지 시간을 잴 겸 걷기. 세계인이 모이는 이곳은 이상하게도 신용카드를 받는 곳이 드물다. 오스트역에서 서역까지 15분이 걸렸다. 길거리는 꽃동산이고 산책하거나 구경다니는 사람들로 엄청 붐빈다.

오랜만에 숙소에 일찍 들어왔다. 낼 아침 6시에 나가야 하는데 아침 식사시간이 6시 30분부터다. 프런트에 말이나 해보자. 낼 아침을 못 먹게 되니 저녁을 먹게 해주든지 아침을 좀 싸달라고 했더니 한참 식당에 가서 얘기하더니 아침에 도시락을 주겠단다. 고맙다.

오랜만에 일찍-11시에 잔다. 비가 차분히 오는 밤 공기가 차다. 미네랄 워터라고 물을 샀는데 탄산이 섞여있다. 다 미네랄 워터라고 써 있어서 뭐가 섞인 건지 구별을 할 수가 없다. 가스를 빼기 위해 뚜껑을 열어 놓고 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