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낯선 바람따라

[등산] 12 유럽 최고봉 엘브루즈 5,642m 등반기 1

낭가 2012. 9. 11. 17:35

- 기간: 2012년 8월 10일~19일(10일) 

- 일정: 모스크바- 테르스콜 체켓봉(3,404m)에서 고소적응,  미르역- 가라바쉬 배럴산장(숙소)

            배럴산장 - 프리윳산장 - 파스튜코바락 인근~정상~ 같은 루트로 하산 

           (지명은 최대한 현지 발음으로 기록했다)

 

                         

프롤로그 ......

 1월 대원 선발을 시작해서 8월 출발할 때까지, 간다고 했다가 빠지고 다시 들어오는등 대원의 변동이 계속되었다. 그 와중에도 설산등반을 처음 해 보는 대원들을 위해 아이젠웍이나 안자일렌 훈련등 기술등반과 장비 사용법을 배우고, 비오는 날 야간 등반과 야영을 하며 꾸준히 팀웍을 다지는데  애썼다.

 

처음 만나는 대원들은 잘 알지 못하고 낯설어 어떻게 같이 등반을 할까,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되었다. 실력도 능력도 적어서 크게 도움이 될 순 없지만, 있는 듯 없는 듯 튀지 않게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 하자고 다짐했다.  그러다가 정*승과 윤*식이 대원으로 합류 했을 때, 천군만마를 얻은 느낌이었다. 다른 대원들과는 함께한 경험이 없지만, *승이는 낭가파르밧을 함께 갔고, *식이는 안나푸르나의 락시피크를 함께 오른 터라 두 사람의 고소 적응력과 등반 실력을 잘 알고 있어 참 믿음직스러웠다.

 

우리 팀은 숫자상으로 나와 인연이 많다. 최고령인 선배님은 59학번이고 난 59년생이다. 난 77학번이고 팀닥터인 윤*식은 77년생이다. 김*필,김*중 두 대원은 88학번인데 우리 큰아이가 88년생이다. 전남대학교 60주년의 타이틀에 걸맞게 59학번부터 11학번까지, 역사를 아우르는 멋진 등반이 되길 기대해 본다.

 

1일차) 8월10일(금): 광주-인천공항-모스크바

새벽4시. 설렘과 기대로 자는둥 마는둥 헤매다 멍해진 몸으로, 몇 번이고 넣고 빼고를 반복하며 꾸려놓은 카고백을 메고 길을 나섰다. 새벽부터 나와 주신 *태형님의 차에 짐을 싣고 전대로 모였다. 환송 나오신 분들과 인사하고 5시, 인천공항으로 출발. 드디어 인천공항에서 *연형님과 최*동선배님까지, 이번 팀 대원 전원이 처음으로 다 모였다. 동행하시는 세분(박*빈,유*열,정*진)도 만났다. 앞날에 신의 뜻이 함께하기를 빌어본다.

  

인천공항에서 9시간10분을 날아 현지시간 5시50분, 모스크바 쉐레메티에보 공항에 도착했다. 여기도 덥다.(시차 5시간) 한글 다음으로 그림같이 아름다운 러시아 문자를 보니 ‘왔구나’ 실감이 났다. 자본주의를 받아 들였다고는 하나 자존심 때문인지 영어를 전혀 쓰지 않아 자력으로 뭔가를 찾기는 어려울듯하다. 알파벳을 닮은듯하나 전혀 다른 키릴 문자.

 

우리가 내린 곳은 모스크바에 있는 5개 공항중 하나로, 작고 허름하고 칙칙했다. 옆에 있는 출국장은 새 건물이다. 유학생 현지 가이드 미스터 권의 안내로 한식당으로 가서 김치찌개로 저녁을 먹고 호텔로 이동. 이동 중에 간단한 러시아 말을 배웠다.

< 아침인사- 도부라에 웃더라, 오후인사-도부리 짼, 저녁인사-도부리 배쳐라, 물-바다, 감사합니다-스파씨발, 우유-말라꼬, 라이터-자지깔까, yes-다, no-옛> 등등 연기를 배우는 사람답게 비유로 얘기를 하니 귀에 쏙쏙 들어온다.

 

금욜 오후라 다챠(지방에 있는 별장)로 가는 차들로 길이 거의 정지상태다. 창밖의 모스크바 풍경은 회색이다. 화려한 치장이나 넘침 없이 그저 묵직하게, 꼭 있어야 할 것들만 있는 도시. 회색 건물에 매달린 LG실외기가 오히려 장식품 같다.

 

 

숙소배정 후 올림픽 한일전 축구(3,4위전)를 함께 보자고 야단이다. 세기의 빅 이벤트라 한국에서 왁자지껄 요란 떨며보면 딱!인 게임인데.... 아쉽다. 일찍 일어나는 것이 힘든 나로선 낼 일찍 모닝콜이 오는 관계로 컨디션 조절을 위해 자기로 했다.  

 

2일차) 8월11일(토): 모스크바-미네랄니예보디-테르스

 

 4시30분. 모닝콜과 함께 들은 한일전 승리 소식. 족쇄처럼 늘 병역문제를 달고 다니는 우리나라 남정네들...여러 면에서 정말 잘 됐다^^

민보디(알고보니 ‘미너랄리 보디’로 ‘미네랄’이라는 단어가 유래된 곳이라고 한다)로 가는 국내선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겨본다. 잔의 크기에 따라 커피 값이 다른 것이 특이하다. 커피 마시는 척 카페에 앉아 이쁜 러시아 여인들을 훔쳐보는 즐거움을 누린다. 김태희가 밭맨다는 러시아 아닌가?ㅋㅋ

 실내외를 가리지 않고 아무 곳에서나 흡연을 하니 곳곳에 담배냄새가 찌들어 있고 사방에서 연기공습이 일어난다. 이쁜 얼굴로 날씬한 몸을 살랑살랑 흔들며 들어와 담배를 척!물면, 에고~다

 

국내선이라 좀 더 흔들릴 걸 예상하고 처방약을 먹었는데 생각보다 얌전하다. 2시간정도 걸려 11시20분 도착, 마중 나온 가이드 ‘빅토르’를 만나 인사하고 차 두 대에 나눠 타고 출발했다. 테르스콜로 가는 길은 서울 탈출 주말 도로처럼 꽉 막혔다.

 

도시를 벗어나자 평야에 펼쳐진 옥수수와 수수 그리고 해바라기. 일하는 사람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데 이 끝없는 밭의 수확은 뉘 손으로 할까? 자원 대국의 풍요 속에서 도스토예프스키 소설 속의 힘들고 어려운 러시아인들의 모습들이 떠올랐다.

차도는 우리식의 노란 중앙선이 없고 흰 점선으로 되어있어 다들 적당히 알아서 편하게 추월을 한다. 앞 차가 늦게 간다고 짜증내는 사람도, 추월한다고 화내는 사람도 없는 듯했다. 길가 주유소 화장실에 들렀는데 시멘트가 발라진 바닥에 크기가 발 하나쯤 밖에 안 되는 작은 구멍만 뚫어져 있다. 큰일 볼 땐 구멍 조준을 잘 해야 할 듯ㅋ

 

 

동네아이들과 수다

 

점심 밥상

출발하고 두어 시간이 지나자 평야지대를 지나 초록의 야트막한 언덕과 산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길가 음식점에서 닭백숙으로 점심을 먹고 동네 아이들, 개들과 잠시 휴식. 4시 15분, 드디어 엘브루즈가 있는 러시아 연방의 '카바르디노발카리야 공화국'에 들어섰다. 국경?지대답게 초소엔 군인과 탱크가 서있다.

 

 

석회물이 희뿌옇게 흐르는 박산계곡으로 들어서니 아파트단지를 이룬 듯 제법 큰 동네가 나타났다.

 

 

 

티르니아우즈 시장에서 감자 양파등을 사고, 치즈에 눈 먼 오대장님은 생치즈를 사서 희희낙락이다. (생치즈엔 부르셀라균이 많으니 먹으면 안된다고 강조하는 수의과 박사님 말씀에 따라 치즈는 가이드에게 선물로 줬다. 무척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ㅋㅋ) 

 

 

드디어 5시40분 숙소인 테르스콜의 에센호텔에 도착. 바로 옆에 만년설 모자를 쓴 산이 둘러있어 신기하다. 선배님들을 위해 저녁에 따로 오승이가 쌀밥을 해놓으니 무척 좋아하신다. 외국에 나와서 자신도 주변도 편하려면 입맛을 글로벌하게, 뭐든 가리지 않고 잘 먹는 것이 첫째인듯 하다.

 

동네 풍경

 

저녁 식사 후 주변 산책. 앞마당처럼 작은 광장을 두고 그 둘레로 음악소리가 요란한 음식점겸 카페가 호기심을 자극한다. 짙은 녹색이 가득한 야트막한 산 색이 너무나 아름답다. 그 산을 바라보며 샤슬릭(양고기 꼬치구이)과 함께 마시는 맥주 한 잔에 괜히 가슴이 울컥하다. 이제 내일부터 고소적응에 들어갈 것이다. 심맥이 빠르다. 알콜 때문일까? 설램일까?

 

로비에서 ‘빅토르’에게서 러시아 알파벳을 배웠다. 생각보다 쉬워서 로비에 쓰인 ‘사우나’란 글자를 읽으니 참 신기하다. 종이를 펴 놓고 알파벳 공부를 했다.ㅎㅎㅎ

 

 

 3일차)  8월12일(일): 테르스콜 체겟봉 (Cheget 3,600m) 트레킹-고소 적응일

 

몇 년 전부터 알 수없는 병이 생겼다. 멀미도 안하고 가릴 것이 없었던 내게 움직이는걸 타면 공포가 밀려오는 병이 생겼다. 내가 운전하는 차는 괜찮은데 남이 하는 건 무서운... 사실 무섭다는 말도 이상한게 난 무섭지 않은데 내 몸이 무서워한다. 놀이기구 증후군이라고 하든가? 그래서 케이블카, 곤도라, 리프트, 바이킹등 내 의지로 제어 할 수 없는 것은 온 몸이 거부반응을 보인다.

 

출발 직전에 TV에서 엘브루즈에 대한 영상을 봤다. 화면을 보다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게 한 것은 아름답고 멋진 봉우리가 아니라 타고 올라가야 하는 리프트였다. ‘아이고! 저런걸 타야 하는 줄 몰랐는데...’ 보는 것만으로 공포가 몰려왔고 심맥이 쿵쾅거리고 호흡 곤란이 왔다. 가능하다면 차라리 그곳을 걸어서 올라가고 싶었다.

 

실제로, 몇 달 전 다녀온 한*용씨에게 전화를 했다. 걸으면 몇 시간이 걸릴지에 대해.. 그러나 팀이 움직여야 하는 마당에 혼자 몇 시간을 걸어갈 수는 없는 일. 바로 팀닥터인 *식에게 전화로 상의하고 정신과에서 약을 처방받아 가기로 했다. 병원에서 약을 처방받기위해 상황을 설명하는 것만으로도 말이 떨려나왔다. 이런! 출발은 코앞에 닥쳤는데 이게 무슨 일이야~~~엉엉엉. 

암담했다 --;;; 

 

체겟봉으로 가는 리프트

 

아침에 일어나보니 가져온 커피믹스가 빵빵하게 부풀어있다. 이곳이 2,100m라는 실감이 났다. 오늘은 고소적응을 위해 3,600m 체겟봉으로 가는 날이다. 체력소모를 줄이기 위해 중간까지는 리프트를 타기로 했다. 어제 국내선을 탈 때 약을 복용했었는데, 비행기는 그래도 곁에 사람이 잡아주니 크게 힘들진 않았다.

다이아목스 1/2알, 징코1알과 처방약 2가지를 먹고 체겟봉을 오르는 리프트를 기다리고 있자니 입에 침이 마른다. 다행히 리프트도 2인용이라 곁에서 잡아주니 훨씬 안심이 되고 생각보다 또 처방받은 약의 효과가 좋은듯하다.

 

그런데 리프트를 내려 체겟봉으로 걸어가는 내내 다리에 커다란 납덩이를 매달아 놓은듯 한 발 내딛기가 힘들었다. 두통이나 소화장애등 증상은 아무것도 없는데 이것도 고소의 증상일까? 천천히 고도를 올리느라 빨리 가지 않아도 되는 것이 감사할 뿐이었다.

 

 

 

고소증세를 호소하는 대원들도 없고 날씨가 맑으니 즐거운 마음으로 자연을 만끽하는 모습들이 너무 좋다. 올라가는 동안 병풍처럼 둘러싼 주변 산군이 너무 아름답고 또 아름답다. 산 넘어가 그루지야라고 한다.

 

 

 

 

 

 

 

체겟봉 휴게소

 

체겟봉 전위봉 3,460m에서 엘브루즈산을 배경으로 한 컷.

체겟봉 전위봉 3,460m에서 사진을 찍으며 한 참을 놀다 하산. 하산은 상하 리프트를 다 타기로 했는데... 근데 리프트가 1인용이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눈 딱 감고 마인드 콘트롤하는 수밖에..... 온 몸을 조여 오는 공포로 쇠줄을 꽉 잡은 손은 쥐가 날 정도이고 온 몸뿐 아니라 정신까지 ‘얼음’인 채 알 수 없는 뭔가와 싸우느라 눈물이 저절로 났다.

땅으로 내려서자 통곡하고 싶었다. 대원들이 이상하게 생각할까봐 썬그라스 안으로 눈물을 닦았지만,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보는 대원도 있어 좀 머쓱했다. 그래도 어쨌든 처음으로 혼자 탔다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

 

4일차) 8월13일(월)  테르스콜-배럴-프리윳산장(4,157m)-배럴

 

정상을 가기위한 최종기지인 배럴 산장으로 가는 날. 등반에 필요치 않은 것은 호텔에 맡기고 필요한 것만 카고백 하나에 넣고 차에 탔다. 이제 또 다른 환경에서 고소 적응을 잘 할 것인지 조금은 염려가 되었지만 모두 컨디션이 좋아 큰 걱정은 안됐다.

 

 

곤도라 정류장
곤도라의 길
미르역에 있는 2차세계대전 희생자 위령탑

 

미르역

테르스콜의 아자우(2,180m)로 이동하여 곤도라를 갈아타며 미르역(3,470m)으로 이동한 후 다시 리프트를 타고 가라바쉬(3,800m)에서 내려  11시 배럴산장에 도착했다.

 

리프트

 

황량한 숙소 풍경
핑크빛 화장실^^

 

배럴산장

 

배럴 숙소 내부

각자 짐과 장비와 식량까지 무거운 짐을 내리고 올리느라 대원들의 수고가 많았다. 이곳의 숙소는 커다란 기름통 모양을 하고 있어서 배럴 산장이라고 하는데  배럴은 일부이고, 나머진 컨테이너이다.  배럴이 환경은 좋으나 이미 예약이 꽉 차서 우리는 컨테이너 숙소로~

 

컨테이너 숙소

 

콘테이너 2층 침대

우리 숙소는 배럴과 마주보고 있는 콘테이너인데 내부는 2층 구조로 12명이 잘 수 있게 되어 있다.

우리 팀은 한 개에 8명씩 두 개를 쓰고, 부대장과 *승은 따로 떨어진 곳에 숙소를 정하게 되었다. 그 8명은 동행하신 세분을 포함한 적막파와 수다파로 나누어줘서 감사할 뿐이다.ㅋ

 

바로 아래에 식당 콘테이너가 있고 위쪽에 간이 화장실이 있어 한 세트를 이룬듯했다. 비록 좁고 열악한 숙소지만, 문을 열면 눈 앞에 카프카스 산맥 연봉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고 창문으론 별들이 지천으로 쏟아지니 맘에 든다.

 

숙소에서 본 풍경

 

 

점심을 먹고 고소적응차 4,157m 프리윳까지 등반하기로 했다. 2시05분, 이중화,우모복,안전밸트,아이젠까지 등반 때와 같은 복장으로 출발했다. 그동안 고소적응이 잘되고 날씨가 좋아서인지 덥다. 이런 날씨만 되어준다면 등정은 별로 어렵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잠시 후 하늘이 어두워지고 천둥과 함께 비바람이 치면서 싸라기 눈이 오기 시작했다. 빨리 하산하자는 대장님 말씀에 따라 3시35분, 3,900m쯤에서 하산 시작했다. 길은 눈이 녹으며 흙과 모래등이 섞여서 상태가 안 좋고 설상차에서 나온 기름과 섞여 시커멓게 흐르기도 했다.

 

5시가 되니 날씨가 갰다. 젖은 옷들을 말리고 배럴구경도 하고 사진도 찍으며 휴식. 대부분의 물은 빙하물을 끓여서 사용하고 생수는 사서 먹어야 한다. 당연히 씻을 물이 없으니 겨우 얼굴과 발만 물티슈로 닦는다. 전기는 저녁 8시부터 10시까지만 켜진다고 한다. 환경이 열악한 곳에 들어왔으니 그 정도의 불편은 당연히 감수해야 할 것이고 오히려 그것이 환경을 지키는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배럴 주변엔 시설물을 짓거나 전기 수송철탑을 세우고 남은 자재 쓰레기가 너무 많고 건축물을 세우는데도 계획없이 세운듯 어지럽다. 아직은 환경까지 생각하진 못하는 모양이다. (며칠 머물면서 쓰레기 좀 치워주고 싶었다.)

 

 

식당 풍경

저녁에 김치찌개가 나오니 모두들 환호성. 각자 가져온 밑반찬(멸치볶음, 매실장아찌, 김장아찌, 굴비절임등등)까지 더하니 이보다 더 좋은 식단은 없을 것이다. 좋은 날씨와 이대로 컨디션이 계속되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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