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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안나푸르나 트레킹(3)

낭가 2012. 9. 10. 14:51

5일;16(월)

촘롱-히말라야호텔(2900) :9.1km

한 없는 돌계단을 내려오는데 말똥이 기차놀이하며 선을 긋고 간

다. 이곳의 수송수단은 말인데 조랑말보다는 크다. 얼마나 힘든지

있는대로 혀를 빼고 배가 등에 붙을 만큼 숨을 헐떡거린다. 그래도

채찍으로 때리는 일이 없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몇 일전 비에 ABC(annapurna base camp)에는 눈이 왔다는데 크

러스트 되지 않으면 러셀하고 가기가 힘들텐데 걱정이다. 등반 자

체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 길에는 갖가지 선명한 색의 꽃이 만발하

고 삐뚤삐뚤 줄쳐놓은 것 같은 계단식 논과 목청 좋은 장 닭, 이마

에 띠를 댄 포터들의 모습까지 정겹다. 걸으면 덥다가 쉬는 즉시 땀

이 식는다. 온도가 많이 낮아지고 계곡을 지나자 매미소리가 사라

졌다. 그만큼 고도가 높아졌다는 얘기다.

9:30분 '시누아'-2340m에서 사과를 (20루피)사먹었다. 작고 못생겼

지만 정말 맛있었다. 가는 내내 음료수나 흔한 콜라 한잔 안 사먹었

는데 사과는 굿~이다. 산딸기도 따먹고 여러 갈래 쏟아지는 폭포구

경을 하다보니 파란지붕의 '뱀부2190m'다. 매미는 사라졌는데 파리

가 많다.

'도반'에서 70대는 됨직한 노부부 3쌍이 흰 머리카락을 날리며 차

마시는 모습이 설산과 어울려 멋지다. 언제나 나도 저런 모습으로

살아야지.....

가다 쉬다 같은 길을 가다보니 만나는 사람들과 계속 만난다. 아일

랜드에서 왔다는 한 커플과 인사를 나눈다. 혼자 와서 팀을 이뤄 다

니는 사람들도 많아서, 한 팀의 국적이 제각각이다.



4시25분 드디어 이름도 멋진 히말라야호텔에 도착했다. 사방이 산

으로 둘러싸여 해를 보는 시간이 3시간 밖에 안되는 곳이여서 금세

땀이 식고 추워진다. 50루피면  뜨거운 물을 반 통 주는데 나는 땀

이 식기 전에 찬물로 빨리 씻었다. 물이 얼음물처럼 차다. 자연으로

돌아온 지금, 최소한의 것을 빼곤 되도록 문명의 냄새에서 벗어나

고 싶다.



저녁을 먹고 댄디씨에게서 네팔에 대한 얘기를 듣는다. 네팔은 지

금 2067년. 예수보다 67년 빠르게 태어나 이 나라를 품은 뉜가가 있

나보다. 1년은 4월에 시작해서 3월에 끝난다. 그래서 달력의 앞장은

'1999-2000'으로 표시되어있다. 숫자도 아라비아 숫자가 아닌 아주

톡특한 기호로, 달력의 숫자를 읽다보니 재미있다. 인도의 경제적

영향력, 공산주의가 우세해서 북한대사관이 들어와 있다는 것, 관

공서와 학교는 10시에 시작해서 4시면 끝나고, 식사는 하루 2끼와

중간 간식을 먹는다는 것등 현재의 네팔을 듣는다. 왕정으로 인한

부패는 심하지만 그것도 이 나라의 운명. 이렇듯 깊숙이 네모난 하

늘을 이고  살고있는 이들이  무엇을 생각할 수 있을까! 

 


6일;17일(화)

히말라야호텔-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MBC3800) :5.4km

영하로 내려갔을까? 고인 물에 살짝 얼음이 얼었다.  고소증을 줄이

기 위해 마신 물과 고소증세의 하나인 소화불량으로 밤중에 화장실

을 드나드는 사람이 는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물을

 마신다. 높은 고도에서는 에너지와 물의 소비가 많아도 사람의 감

각은 채 그것은 느끼지 못한다. 그리곤 물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그

순간이 오면 이미 우리 몸의 균형이 깨져서 이상 증세를 가져오기

때문에 미리 자주 먹어야하는 것이다. 고도 2500m가 넘어가니 몸

이 안 좋은 사람 몇 몇은 두통에 시달리며 체력이 뚝 떨어진다. 처

음엔 두통과 소화불량으로 시작되는 고소증은 심하면 뇌수종 폐부

종을 일으키며 사망에 이르는 아주 무서운 것으로 고소증세가 나타

나는건 당하기 전엔 아무도 모른다.



'힌쿠'. 커다란 바위로 히말라야에 들어서는 길목이다. 옛날엔 여자

와 죽은 짐승은 이곳을 지나 더 이상 갈 수가 없었다한다. 갈기처럼

길게 잘린 바위 결이 눈부시다. 힌쿠에 올라서니 마차푸차레의 꼬

리가 보인다.

'데우랄리'쉼터의 찻값은 40루피, 콜라는 70루피다. 저 아래에서 이

곳까지 지고 온걸 생각하면 그것도 싸다. 덴마아크 커플과 인사. 여

자는 3개월 됐는데 카트만두에서 선생님이란다. 겸손해 보이는 모

습이 이뻐서 한국에서 가져간 작은 하회탈모형을 줬다. 갑작스런

선물에 무척 감사해 한다.  

얼음 터널을 만나다. 동산인줄 알고 오르려다 미끄러졌다. 겨우내 쌓인 얼음이 녹아서 터널처럼 된 모양이다. 그러나 다 녹기 전에 곧 또 다른 눈이 덮을 것이다.

잠시 숨었던 안나푸르나가 보이며 12시30분 MBC(machha puchhare basecamp)에 도착했다. 금세 추워져 자켓을 꺼내 입고 뜨거운 차를 마신다. 셀파 장부(박영석씨와 칸첸충가를 오른 능력있는 셀파)에게서 네팔국기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난리부라스'라는 꽃은 32종이나 되는데 그중 짙은 빨강색이 국화란다. 



점심을 먹고 몇이서 고소적응겸 ABC 정찰을 하러 갔다. ABC로 가

는 길은 완연히 달라져서 나무는 거의 없고 수염처럼 긴 잡초가 노

랗게 물든 길이다. 물은 빙하의 석회수가 침전되어 히뿌연하고 바

람이 차다. 모레인 지대 제방을 따라1시간 30분 정도 가니 ABC가

보인다. 입구에 한글로 쓰인 인사가 반갑다. 몇 대원은 두통과 메스

꺼움에 힘들어 한다. 내일 가야할 길을 찾으러 모레인 지대를 내려

다 보니 이건 길이 아니라 절벽이다. 거의 수직으로 선 곳을 100m

쯤 내려가야하는데 40kg을 지고 내려 가야 할 포터들이 걱정이다.


 

멀리 보이는 타푸출리도 구름에 가려 루트가 보이지 않는다. 길을

찾고 구름이 걷히길 기다리다가 너무 시간이 가는 것 같아 나는 경

험이 적은 두 사람과 먼저 MBC로 돌아왔다. 날은 어두워지고 저녁

이 됐는데 나머지 대원들이 돌아오지 않자 셀파와 몇 명을 보

냈다. 같이 가다가 혹 나까지 짐이 될까싶어 나는 기다리기로 하고

셀파들만 보냈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서 있으니 별

생각이 다 난다. 이 넓은 히말라야에서 길을 잃은 건 아닐까? 뉜가

혹시 모레인 지대를 내려가다 다친건 아닐까? 가끔 보이는 불빛에

반갑다가 실망하기를 한참. 드디어 줄지어 내려오는 불빛이 보인

다. 다행이다.

모두들 저녁도 못 먹고 기다리고 있었다. 식사 후 내일의 일정에 대

한 회의가 있었다. 타푸출리 등반팀은  회의 후 등반에 필요한 장비를 챙긴다. 부산한 가운데 잘 다녀오라는 인사말과 챙겨주는 간식들이 고맙다.

이제 신발 끈을 매고 얼마나 열심히 걷느냐만 남았다. 적어도 남에

게 짐은 되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에 두려움과 비장함 마저 든다. 두

통이 없지만 두통약을 한 알 먹었다. 아직은 괜찮은데 언제 고소증

세가 시작될지 걱정이다. 잠이 오지 않는다.